일상적 삶
11월의 어느 날…
나태주 시인은 11월을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이라 했다. 한해의 막달에 대한 아쉬움이 아닌 크리스마스의 낭만에 취하는 12월과는 달리 11월은 확실히 홀로 막막한 길 위에 선 느낌이다. 세상을 온통 화려하게 물들이고 떠나가는 ...
김장군과 허선녀
연휴 시작하자마자 두 친구가 여행을 떠났다. 바닷가를 찾은 건지 하늘가를 원했던 건지 그렇게 파아란 하늘이 그저 좋았던 두 여인은 청명한 가을 하늘 벗 삼아 여유로운 산책길에 나섰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두 사람 앞에 또 ...
시간의 점
또 하루가 이렇게 저문다. 눈부시도록 찬란한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벤치에 앉아 조용히 사색에 잠겨 보낸 순간들이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가장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의 한 점으로 기억될 수 있다. 은은한 물빛으로 빛나고 있는 바닷가를 저 멀리 ...
파란 장미의 꽃말을 아시나요?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더라?” 아주 뜬금없이 이런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게 될 때가 있다. 그동안 전혀 의식하지 못하다 문득 우리 관계의 기원과 역사가 궁금해지는 순간. 너무 오랫동안 당연시되던 관계가 새롭게 인식되는 그런 순간 말이다. ‘통역대학원’이라는 매개로 친구가 ...
선택과 책임, 그 행복의 무게에 대하여.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3월부터 출근 시작한 며눌님의 생일이었다. 이제 곱절로 고단해질 워킹맘 아내를 위해 어린 신랑은 한 달 전부터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더랬다. 이날 지유 좀 봐달라는 아들에게 그러마 했고 그날이 왔다. 이왕이면 온전한 하루를 선물할 양으로 ...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제발…”
여느 때처럼 아침 뉴스를 들으며 커피를 내리는데 앵커의 날짜 멘트가 내 맘에 탁 걸렸다. 가만있자. 이 날짜가 왜 이리 각별한 거지? 생각해보니 바로 4년 전 이날 우리 혀기와 미니가 결혼을 했다. 그렇구나. 애들의 결혼기념일이네. 아들에게 ...
“학교 가는 게 젤 좋았어요.”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입덧이 심해서 아무것도 못 먹는 며느리가 전에 내가 해줬던 시래기 된장국만 먹고 싶단다. 고뤠? 그럼 당장 끓여야지. 점심 먹으러 오라고 큰소리를 쳐놓고는 달랑 시래깃국만 내놓기 뭐해서 집 앞 마트까지 빛의 속도로 다녀왔다. ...
“내 나이 쉰에 할머니라니…”
고3 아들의 대학원서 쓰는 시기였다. 그때도 워킹맘으로 살아가던 나는 큰애가 고3이 되도록 학교 방문한 게 다섯 손가락도 채 안될 정도로 삶이 늘 바빴다. 아이들은 어쩌면 지들이 알아서 잘 커준 건지도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나는 참 ...
나의 새 친구, 묵동에게
묵동, 안녕! 난 얼마 전에 여기 묵동으로 이사온 지오라고 해. 그 말인즉슨 이젠 나도 엄연한 중랑구 구민이라는 얘기지. 만나서 반가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 참, 네 이름, ‘묵동(墨洞)’말야.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인 ‘먹(墨)’을 이곳에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지? ...
엄마로 산다는 것.
햇살이 참 좋은 오후였다. 논문 마감을 맞추느라 전쟁 같았던 지난 한 달여의 시간을 지나 오랜만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찾은 교정. 나무벤치에 앉아 여기저기 무심하게 주위를 둘러본다. 조금씩 섬세하게 변하고 있는 초록 세상. 나무 위의 초록은 다양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