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장미의 꽃말을 아시나요?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더라?” 아주 뜬금없이 이런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게 될 때가 있다. 그동안 전혀 의식하지 못하다 문득 우리 관계의 기원과 역사가 궁금해지는 순간. 너무 오랫동안 당연시되던 관계가 새롭게 인식되는 그런 순간 말이다.

‘통역대학원’이라는 매개로 친구가 된 네 여인이 얼마 전 번개 여행 비스무리하게 제주도를 다녀왔었다. 넷이서 함께 한 여행이 처음이더라. 여행 내내 이 조합이 가능했던 이유를 찾아 과거의 기억들을 추적하다 보니 우리의 역사가 30년이 되어간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관계의 인스턴트화가 때론 쓸쓸하게 하지만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부여를 하며 사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가 됐다. 그런데 30년이라니… 우리는 이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었던 거다. 참 감사한 인연이다. 

살면서 내편이 되어줄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든든한 법이다. 현재의 내 기분을 한 단어로도 설명 가능한 사이. 이것이 관계의 지속에서 켜켜이 쌓여온 역사적 서사가 갖는 힘이자 가치가 아닐까 싶다. 

‘나도 무거운 짐 내려놓고 싶다.’ 이 시그널만으로도 내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마음이 쓰이고 함께 해주고 싶은 관계. ‘힘내’라는 섣부른 위로보다 그 고단한 마음 한 구석 말없이 내 진심으로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관계.

함께 한 시간만큼 깊어진 유대감으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동안 살면서 어디 순탄하기만 했을까. 우리는 힘들 때마다 나와 비슷하게 힘든 누군가를 찾고 그와 아픔을 나누고 손잡으려는 모습에서 서로를 구원한다. 


시대가 강요하는 억압과 고통에 시름하며 버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이것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연대와 유대의 필요성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일 여유조차 없는 우리가 그럼에도 해야 하는 건 아픈 사람을 보는 것이다. 

지금의 힘듦이 내 고유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고통의 95%는 구조적인 문제이며 5%만이 우리 몫이란다. 그러니 많은 고통이 사실은 개인적 고뇌가 아니며 나 말고도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별일 아닌 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무거운 생각을 툭툭 털 수 있을 때 그다음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언니, 혼자만의 짐이라 생각하지 말자. 그 짐의 무게 난 감히 짐작조차 못해. 일단 여기 내려놔봐. 음.. 뭐부터 버릴까.”

P. S 나 힘 완전 셈. 무거운 거 잘 버릴 수 있음(^.^)

그리고 나의 최애, ‘블루’에 관한 단상 하나~

블루한 일상에 더 다크한 블루로 맞서고 싶어지는 오후…

프러시안 블루… 어둠속에선 블랙과 구분되지 않는 

깊고 짙은 농도를 담은 그 강렬함 속에

태양빛과 만나 만들어내는 블루 특유의 청량함

그 신비로운 파랑

참, 혹시 파란 장미의 꽃말을 아시나요? 최근 내 눈에 담긴 파란 장미의 꽃말은 원래는 ‘불가능’이었다가 나중엔 그것이 가능해졌음을 의미하는 ‘기적’으로 바뀌었단다. 우리의 고단한 삶에도 그런 희망을 품고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