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게 젤 좋았어요.”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입덧이 심해서 아무것도 못 먹는 며느리가 전에 내가 해줬던 시래기 된장국만 먹고 싶단다. 고뤠? 그럼 당장 끓여야지. 점심 먹으러 오라고 큰소리를 쳐놓고는 달랑 시래깃국만 내놓기 뭐해서 집 앞 마트까지 빛의 속도로 다녀왔다.

그렇게 두어 시간 분주하게 식사 준비를 하고 나니 초인종이 울렸다. 며느리는 언제 입덧했냐는 듯 엄지척을 해대며 순식간에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심지어 나물도 불고기도 이것저것 골고루 아주 잘 먹는다(뿌듯^^). 시엄니한테 밥해달라고 찾아오는 며눌님이 어찌 예쁘지 않을소냐.

밥을 다 먹고 차를 마시며 자연스레 이야기꽃이 도란도란 피었다. 문득 아들 며느리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해졌다. 내 아들 혀기는 어떤 학생이었는지 며느리한테 물었다. 참 든든했단다. 거뭇거뭇 수염이 나기 시작하는 남학생들 다루기 힘에 부쳤는데 혀기가 있어서 아주 편했다고. 옆에서 흐뭇하게 미소 짓는 아들한테 물었다. 네가 어떻게 했는데?

반장 신분을 이용해 권력을 좀…(어허, 권력남용은 그 어떤 경우라도 용서될 수 없음). 일단 단죄하는 의미로 눈을 한 번 흘겨주고(ㅋㅋ). 

우리 며눌님 미니샘의 과학수업 시작 직전엔 늘 아들 혀기가 먼저 교단에 올랐단다. 친구들 수업태도 미리 단속하는 요원쯤 되려나? 미니샘 수업시간에 졸기 있기 없기? “없기”, 샘의 질문에는 어떻게? “우렁차게 대답” O~K.

덕분에 유일하게 혀기네 반에는 과학시간에 조는 친구도 없고 대답도 제일 크게 잘했다고. 그 말을 듣다가 웃음이 터졌다. 저 녀석, 내 아들 맞아? 

나 역시 고교시절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었다. 나의 사랑은 그저 국어시간에 선생님 말씀 한 마디도 안 놓치고 좋은 국어성적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그게 다였다. 나의 소극적인 외사랑에 비하면 우리 혁이의 사랑은 참 적극적이고 선한 영향력까지 겸비했었구나. 

성격이 소심하고 자신감이 부족했던 아이, 남 앞에 나서길 질색했던 녀석(자칭 쭈구리)이 저렇게 달라지다니 새삼 사랑의 힘은 참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미니샘을 위해서라면 뭔들… 그러니 혀기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서 척척 우등생이 되고 전교회장이 되고 그렇게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가 된 게다.

돌이켜보니 아들한테 공부 좀 하라고 말해 본 기억이 없다. 내가 채근하지 않아도 녀석에게는 공부 열심히 할 동기부여가 충분했던 거다. 미니샘이 계신 학교는 내 아들이 매일 아침 최고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찾아가는 행복한 공간이었고, 공부는 할수록 더 잘하고픈 그 무엇이었던 거다.

이제 보니 ‘세상 행복한 고딩 혀기’를 만들어준 8할이 바로 나의 며눌님, 미니샘이었구나… 자식 교육 잘 시켰다고 칭찬받았어야 하는 사람은 엄마가 아닌 미니샘이었네(헐~~).

갑자기 내 공이 무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이 허탈감은 뭐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