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책임, 그 행복의 무게에 대하여.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3월부터 출근 시작한 며눌님의 생일이었다. 이제 곱절로 고단해질 워킹맘 아내를 위해 어린 신랑은 한 달 전부터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더랬다. 이날 지유 좀 봐달라는 아들에게 그러마 했고 그날이 왔다. 

이왕이면 온전한 하루를 선물할 양으로 새벽같이 아들네를 찾았다. 둘의 놀라는 표정엔 아랑곳 않고 쫓아낼 기세로 채근했다. 잠시 후, 기대 가득 상기된 얼굴의 며느리, 의미심장한 미소로 그 뒤를 따라나서는 아들. ‘그래, 오늘은 모처럼 자유롭게 연인이 되어라.’

집에 남겨진 지유와 나, 그리고 점잖은 냥이 하비. 새봄과 함께 어린이집에 간 지유는 그동안 엄마 아빠랑 집콕하며 원 없이 받은 사랑 덕인지 씩씩하게 적응 잘하고 있단다. 자기표현에 당당한 지유를 보며 딸과 처음 떨어지는 초보 부모는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고. 

사범대 4학년생인 혀기에게 임용고시가 있는 올해는 터프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코스모스 졸업예정자라 하반기엔 시간 확보가 좀 낫겠지만 이번 막학기는 아내 출근시키랴 지유 어린이집 데려다 주랴 학교 수업하랴 집안일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수험생 모드로 돌입한 지 한 달째. 언제부턴가 녀석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공부는 재밌는데 부담감이 크다는 아들을 위해 슬프게도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인간의 실존은 결국 스스로 짊어지는 것이기에. 

나이가 어려도 가장은 가장. 사랑하는 미니에게 안정된 직장인 남편을 둔 친구들 못지않은 안락한 삶을 만들어주고픈 아들. 올해 취직을 못하면 하늘이 무너질 것 같단다. 완벽주의자 아들이 느낄 가장의 무게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온다. 나도 휘청한다. 

어린 나이에 담임샘과 결혼하겠다는 그 야무진 결심엔 이런 현실도 감안됐으련만 체감은 또 다를 테다. 어쩌랴. 선택에 따르는 책임인 것을. 혀기가 불안해할수록 미니는 더 힘들 게다. 남편이 행복하게 공부하길 바랄 건데. 그게 진정 미니를 위하는 길임을 혀기가 잊지 않기를.

요즘은 일이 없었으면 싶다. 내가 지유를 봐주면 그 걱정이라도 덜고 혀기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으려나. 그나마 지유가 엄마 아빠 맘 덜 아프게 어린이집에서도 행복하니 얼마나 감사한가. 손녀를 안아주며 몇 번을 고맙다고 말했다(한 천 번쯤??ㅋㅋ)

지유를 재우고 한참을 어두운 거실에서 하비와 놀아주었다. 애틋하기는 이 녀석도 마찬가지. 10시가 다 돼서 하루의 연인들이 돌아왔다. 어둠 속에서도 행복한 미소는 빛났다. 미니가 소파 내 옆에 바짝 다가앉으며 오늘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고 감사하단다. 

영화 [소울]을 보며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에 혀기가 펑펑 울더란다. 저도 눈물이 났다고. 이 평범할 수 없는 부부의 행복을 지키고픈 그 간절함에 나도 그만 코끝이 시큰해왔다. 도전적인 한 해를 살아내야 하는 며느리 생일날, 손편지 말미에 내 진심도 담았다.“사랑하는 미니야, 네 뒤에는 내가 있다. 힘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는 미니 편’이라고 일관되게 외쳐주는 엄마가 더 고맙다는 우리 혀기에게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올해 임용고시로 이 세상은 끝나지 않아. 너 자신을 믿어. 아들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만 하면 돼. 그럼 계속 행복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