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군과 허선녀

연휴 시작하자마자 두 친구가 여행을 떠났다. 바닷가를 찾은 건지 하늘가를 원했던 건지 그렇게 파아란 하늘이 그저 좋았던 두 여인은 청명한 가을 하늘 벗 삼아 여유로운 산책길에 나섰다.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두 사람 앞에 또 우리 상식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성격의 스님 한 분이 홀연히 나타나시었다. 이게 아닌데… 우리가 스님을 만나러 온 게 아닌데. 우리 셋은 그렇게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아름다운 하늘 아래 어색한 삼각형을 만들며 마주 서게 되었으니. 

근데 스님, 참 동안이시다. 그리고 차~암 말씀 많으시네. 수다쟁이 스님 앞에서 난감해진 두 여인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 눈빛만 교환. 스님 말씀을 당최 끊을 수가 없다. 

‘제발 우리 좀 그만 보내주시지요. 스님.’ 

내 마음의 소리엔 아랑곳 않는 야속한 그분의 네버엔딩 스토리는 체념과 최소한의 예의 그 어디메쯤에서 우리를 애매하게 붙잡고 있었다. 그저 산책한 죄밖에 없는데 왜 이리 큰 시련을… 이분은 왜 지금 이토록 많은 시간을 우리에게 쓰고 계신 걸까. 그저 심심해서? 그럴지도. 이분은 왜 그리 우리 인생을 상관하고 싶으신 걸까? 할 수 있으니까? 그럴지도. 그때 문득 드는 생각. 어찌 됐든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누군가에게 할애한다는 그 자체는 고마운 일 아닌가? 

암튼 엄청 영이 맑으신 분임에는 틀림없다. 그냥 우리의 전생이 막 보이시고 우리의 미래가 떡하니 그분 앞에 나타났다고 하시니. 신기한 건 막 던지시는 것 같은데 다 맞는다는 거다. 특히 내 성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셨다. 간파당한 느낌. 왠지 찝찝하면서도 이게 뭐지 싶다. 이놈의 자존심 강한 성격 때문에 내가 가진 엄청난 복을 다 찾아먹지 못한다나. 부러지는 대나무라서 인생이 고달픈 거란다. 그냥 굽히란다. 그것도 맞다. 근데 내 인생에서 말년이 가장 좋다네? 에헤라디야… 다른 말은 다 슬라이드 빨리 돌리기 하던 내가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반응했다. 

“정말입니까? 스님!” 

이리 무감한 듯 보여도 잘 살고는 싶은 게다. 나도. 이렇게 언제까지나 고꾸라진 채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은 게다. 내가.

마지막 헤어질 때, 스님이 그랬다. 나는 생긴 것만 여자요. 속은 남자. 전생에 장군이었다고. ㅋㅋ 내 베프는 천생 여자. 전생에 선녀였단다. 어머나 세상에. 너무도 정확하지 않은가. 김장군과 허선녀. 정말 딱이다. 늘 자기 관리가 철저한 나의 베프는 한순간도 그냥 퍼져있는 법이 없다. 그 어딜 가더라도 늘 풀메이크업에 하이힐, 그리고 기막히게 멋진 옷차림으로 허리 꼿꼿하게 세우고 당당하게 걷는 그녀. 바로 허선녀다. 나 김장군은? 헐렁한 트렌치코트에 바지 운동화. 웨딩드레스 입을 때 딱 한 번 해 본 풀메, 어쩌면 그게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화장일지도. 그러고 보니 스님이 우리 전생을 그저 우리 외모로 미루어 짐작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솔솔… 

‘딱 봐도 알겠구만 뭐.’ 

그래서 그냥 어느 눈부신 가을날, 내 ‘말년이 행복하다’는 달콤한 꿈을 꾸었던 걸로!!

1 thought on “김장군과 허선녀”

  1. 스님을 저때 보내시고 이제 저를 보내셧네요..우리 장군님을 위해서.. 저 하늘은 우리 장군님 마음밭..장군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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