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일차_회자정리會者定離

이른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카톡이 울려대더니 기어이 갑작스럽게 외출해야 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간만에 집에서 게으름피우며 채점도 하고 소설도 읽고 할 양으로 혼자 행복해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카톡을 받기 전까지 나는 어젯밤에 새로 펼친 최은영의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다가 슬퍼졌더랬다. 네 번째 단편을 다 읽고 났는데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하면서 눈물이 났던 참이다. 화자의 언니를 향한 그 복잡한 감정의 끝자락에서 자신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깊은 애정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그 마음이라니. 투명한 미움이 복잡하게 얽힌 그 사랑에 내 가슴이 아렸다. 

그렇게 센치해진 마음으로 지하철역까지 천천히 걸었고 7호선 지하철을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내 앞에서 스르륵 열리던 문을 지나 무심하게 지하철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출입문 옆에 기대어 에어팟을 꺼내 귀에 꽂고 휴대폰을 터치한다. 그때 뉴스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배우 이선균이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ㅠ

새벽부터 차곡차곡 쌓여가던 슬픔에 또 하나의 슬픔이 보태졌다. 이 슬픔엔 뭔지 모를 분노가 섞여 있었던 것 같다. 어디를? 누구를 향한 분노였을까. 

하루가 어찌 흘러갔는지 모르게, 그렇게 침잠한 채로 오늘을 살고 집에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늘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건 해야지? 하루종일 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사자성어, 회자정리(會者定離)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바로 그 말. 석가모니가 마지막 눈을 감기 전에 제자들에게 했다고 전해지는 바로 그 한 마디는 이렇게 쓴다.

만날 회(會), 사람 자(者), 반드시 정(定), 헤어질 리(離)

‘회자(會者)’는 ‘만남이라는 것’으로 봐도 될까. ‘자(者)’는 여기서 ‘것’이라 해석하고 싶으니. ‘정리(定離)’는 ‘반드시 헤어진다’의 뜻이다. 그러니 만남이라는 것은 헤어짐을 담보한다는 뜻이렷다. 자신의 임종을 지켜보는 제자들에게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만나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

만나면 곧 헤어지듯 산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나니 슬퍼할 게 없다는 거다. 이것이 석가모니의 제자들을 위로하는 방법이었던 거다.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무는 건 없다고. 그렇게 인연은 왔다가 떠나는 것이라고.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고. 

오늘은 마종기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로 대신하려 한다. 겨울이 되면 늘 한 번씩 꺼내 읽게 되는 참 좋은 시다. 이 시의 마지막을 보라. 방문객은 언제나 떠나는데,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평화를 빈 두 손으로 받는다고 말하는 시인이 있다. 그래, 오늘 나도 그 시인을 따라 평화를 내 마음에 들이고 싶어졌다. 이렇게~

방문객 / 마종기

무거운 문을 여니까

겨울이 와 있었다

사방에서는 반가운 눈이 내리고

눈송이 사이의 바람들은

빈 나무를 목숨처럼 감싸안았다

우리들의 인연도 그렇게 왔다

눈 덮인 흰 나무들이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복잡하고 질긴 길은 지워지고

모든 바다는 해안으로 돌아가고

가볍게 떠올랐던 하늘이

천천히 내려와 땅이 되었다

방문객은 그러나, 언제나 떠난다

그대가 전하는 평화를

빈 두 손으로 내가 받는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thoughts on “97일차_회자정리會者定離”

  1. 저도 오늘 이선균의 소식을 보고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일어났어요. 마치 설리때와 같은…
    한 가정의 가장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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