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일차_일취월장日就月將

오늘 아침에 자료 검색하다가 재미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일취월장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물론 대다수는 당연히 알리라.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자성어 ‘일취월장(日就月將)’의 의미는 ‘나날이 다달이 자라거나 발전함’이다. 그런데 2021년 4월에 국어사전 오픈사전에 이 단어가 신조어로 떡하니 등장했더라. 어떤 뜻으로? ‘요일에 하면 요일에 난이 아냐’란다. 이 문장의 앞 글자만 따서 일취월장이라 말한단다.

이 한 문장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언어학 개론’ 수업 첫 시간에 교수님이 칠판에 ‘언어의 특징’이라고 쓰시던 강의실 풍경이다. 그렇다. 언어는 그렇게 언중(言衆)이 많이 쓰는 대로 의미가 변하는 게 아주 당연한 거다. 그게 언어의 특징이고 본질이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런 말장난도 버젓이 신조어라고 올라온다고? 아무튼… 난 아침부터 이렇게 이젠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것에 대해 뒷북치고 있었다는 얘기다. 격세지감을 느끼며 말이다. 그러면 이왕 이렇게 말 나온 김에 오늘 ‘일취월장(日就月將)에 대해 얘기해봐도 좋을 듯하다. 한자풀이부터 보면 이렇다.

날 일(日), 나아갈 취(就), 달 월(月), 발전할 장(將)

‘일취(日就)’는 ‘나날이 나아감’이요, ‘월장(月將)’은 ‘다달이 발전함’이다. 그러니까 ‘매일 매일이 다르고 매달마다 바뀐다’는 뜻이다. 이 말인즉슨 끊임없는 노력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발전한다는 의미인 거다. 요즘은 잘 모르겠는데 예전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에 꼭 빠지지 않던 사자성어 중 하나가 바로 일취월장이었다. 

이 성어의 출전을 찾아보니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으로 알려진 <시경(詩經)>의 ‘주송(周頌)’이더라. 그중에서도 ‘대아(大雅)’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日就月將,學有緝熙于光明(일취월장, 학유집희어광명)。” 날마다 달마다 나아가라, 배움이 광명에 이르리니.

공자가 가장 이상적인 시대로 꼽는 주(周)나라 때의 가르침이니, 고대 왕실이었다면 왕이 신하들에게 당부하는 말로 쓰였을 테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학문에 정진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수시로 했을 법한 얘기고. 그러니 이 단어에는 다분히 유교적 가치관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하겠다. 

언제부턴가 교육에 있어 ‘날마다 나아진다’는 이 좋은 얘기에 자꾸 반감이 들기 시작하더라.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외치는 시대가 은연중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달까. 어떻게 매일매일 나아질 수 있다고. 어찌 매달 발전할 수 있다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 머릿속 이상적 모델로는 손색이 없는 이 말이 왜 나한테 와서는 덜컹인 걸까. 

우리 아이들에게 ‘~보다 더 나은’이 아니라 ‘~와는 다른’이라는 시각을 가르쳐주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배움’을 바라볼 때 ‘더 나은’만을 강조하다보면 우리의 과거는 늘상 버려지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미래의 좀 더 발전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 잠시 뒤돌아서서 쉼표를 찍을 여유가 없을 테니까. 

숨 가쁘게 열심히 살아가는 일상적 삶 속에서도 우리는 늘 불안하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어쩌면 그 이유가 미래에 희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과거의 상실 때문이 아닐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그때부터 난 이제 ‘어제와는 다른 내일’을 꿈꾸기로 했다. 어제도 좋았고 오늘도 좋아야 하니까. 그저 다를 뿐인 걸로!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의 내 삶이 어제보다 나아지지 않았다 해서 자책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능력주의의 시대를 살다보니 우리는 성장에 대한 강박으로 정말 열심히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돌아볼 일이다. 혹자는 게으른 자의 합리화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 난 한 번쯤은 바삐 걸어가던 발걸음에 쉼표를 찍고 유발 하라리가 제안한 ‘시간을 낭비할 특권’을 선언할 배짱도 있었으면 싶다. 

나부터 그리 살아보고 싶어졌다. 깊은 심심함 속에서 멍하니 생각도 좀 해보고 비생산적인 일이지만 그것도 한 번 탐색해보고… 그렇게 조금은 다른 시간을 살다보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의외의 일상이 만들어질지 누가 알겠나. 그런 사색적 삶도 우리에겐 필요함을 우리 자신도 이미 알고 있잖은가. 뒤쳐지지 않아야겠기에 그저 계속 앞으로만 질주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정답은 없다. 그저 이렇게도 저렇게도 자꾸 시도해보며 살아갈 수밖에. 그래서 나의 새해 바람은 ‘~보다 더 나은’의 욕망은 잠시 접어두고 ‘시간을 낭비할 특권’을 누려보는 걸로!! 아주 잠깐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