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일차_구우일모九牛一毛

구우일모(九牛一毛), ‘아홉 마리 소 가운데서 뽑은 터럭 하나’라는 뜻이다. 상상해보라. 이 성어가 함의하는 바가 뭐겠는가? 그렇다. 대단히 하찮은 것을 가리켜 이르는 말이다. 이 성어는 중국의 그 유명한 역사가 사마천과 관련된 고사에서 유래했다. 그 스토리는 언제 들어도 늘 짠하다. 고단했던 사마천의 인생이 참 가슴 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자, 그럼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자풀이부터 함 봅시다. 

아홉 구(九), 소 우(牛), 한 일(一), 털 모(毛)

한자를 보니 어떤가? 완전 심플하지 않은가? 모르는 한자 한 개도 없을 테다. ‘구우(九牛)’는 말 그대로 ‘아홉 마리 소’다. ‘일모(一毛)’는 ‘한 가닥 털(??)’ 가만, ‘터럭 하나’가 좀 더  익숙하려나? 사람이나 길짐승의 몸에 난 길고 굵은 털을 가리켜 ‘터럭’이라 하지 않나. 이 표현을 써서 전체적인 해석을 하자면, ‘소가 아홉 마리나 되는데 그중에 터럭 하나’라는 뜻이렷다. ‘아무런 쓸모도 없도록 만든다’는 의미의 ‘무화(無化)’된 존재라 하는 게 더 맞겠네. 구우일모(九牛一毛)란 그러니까 그렇게 보잘 것 없는 것을 말하고자 할 때 쓰는 사자성어인 게다.  

그럼 이 성어는 어디서 유래했는가? 중국의 한(漢)나라로 가보자. 사마천을 만나야 하니. 한나라에게 골칫거리는 바로 북방의 흉노족이었다. 그러니 흉노와의 전쟁이 늘 한의 중대사가 아니었겠나. 어느 날, 한나라의 장수 이릉이 흉노를 토벌하러 나섰다가 크게 패하고 흉노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단다. 그때는 그 유명한 한무제(漢武帝)가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릉 일족을 참형에 처하라 명을 내렸다. 

이때 이릉을 변호하며 나서는 신하가 있었으니, 바로 사마천이었더라. 그로 인해 한무제에게 밉보인 사마천은 궁형(宮刑)을 당하게 된다. 그 치욕을 당하고도 그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제대로 된 역사서를 쓰라’는 아버지의 유언때문이었다. 

알다시피 그의 아버지 사마담은 중국 전한 때의 사상가였다. 천문과 역법을 주관하고 황실의 전적을 관장하였다. 그는 아들 사마천에게 자신이 쓰던 사적(史籍)을 완성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지 않았던가. 

그렇게 사마천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의 시간을 견디며 끝내 그 불후의 명작 <사기(史記)>를 집필해내고야 만다. 그가 궁형을 당하고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친구인 임안(任安)에게 참담한 심정을 담아 편지를 썼다. 설령 자신이 법에 따라 처형을 당해도 ‘아홉 마리 소 가운데 터럭 한 올 없어지는 것과 같지 않겠냐고 토로했던 대목에서 구우일모(九牛一毛)가 나온 거다. 

그 비루한 시간을 견녀냈기에 사마천 사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남았다고 생각하면 늘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다. 그리고 역사가로서의 그 사명감에 존경심이 안 생길 수가 없더라. 우리도 잘 알지 않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하찮은 존재 같다고 느껴질 때, 그 삶을 버텨내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말이다. 

자신을 아홉 마리 소들 가운데 터럭 하나로 비유한 사마천의 그 슬픔과 절망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는 듯하다. 그래서 난 사마천이 듣지 못할지라도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그대는 중국 역사의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노라고. 그대가 남긴 그 멋진 책으로 인해 중국의 고대가 생생하게 현대에 다시 살아났노라고. 그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대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