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일차_단도직입單刀直入 

단도직입(單刀直入)이라는 말의 어감은 어떤가? 우리 일상에서 정말 자주 사용하는 이 단어의 구조를 들여다본 적은 없으리라. 그냥 우리말처럼 썼을 뿐. 이 성어는 ‘칼 한 자루를 들고 혼자 적진을 향해 거침없이 쳐들어간다’는 뜻이란다. 전장에서의 행위가 그 의미 확장을 통해 이제는 우리의 일상적 대화에서 ‘우회함 없이 곧바로 요점을 말하는 상황’을 가리켜 이르는 말이 되었다.

단도직입(單刀直入)의 한자구성은 그럼 어찌 되는지 한 번 살펴봐야겠다. 

홑 단(單), 칼 도(刀), 곧을 직(直), 들 입(入)

‘단도(單刀)’는 ‘한 자루의 칼’이다. ‘직입(直入)’은 ‘곧바로 들어가다’고. 그러니까 이 말은 달랑 칼 한 자루 들고도 용감하게 적진에 들어가는 것을 묘사함으로써 이것저것 따지면 아무 것도 못한다는 메시지를 말하고자 함이다. ‘망설일 것 없이 바로 하라’는 말인 거다. 

이 성어는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나온단다. 이것은 중국 송(宋)나라의 도원(道源)이 1004년에 지은 불서(佛書)다. 이 책은 북송(北宋)시대에 사대부의 교양서로 읽힐 정도로 아주 유명한 책이었다네. 

가만 있자. 북송(北宋)이라고? 남송(南宋)은 성리학의 대가 주희(朱熹) 때문에 자주 거론되었지만, 북송은 처음이지 아마? 하지만, 중국의 북송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태평성대다. 중국 역사에서 북송시대가 가장 번화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잘 살았다고 하지.

얼마 전 중국 드라마 <청평악(清平樂)>의 배경이 되었던 게 바로 북송 인종(仁宗) 때였다. 그 드라마 속 북송의 풍경은 정말 화려하고 아름답더라. 송 인종(宋仁宗)을 연기한 배우 왕카이의 품격 높은 대사 속에서 중국어의 우아미가 제대로 살아났던 바로 그 작품이다. 이래서 역사 고증이 잘 된 예술작품은 역사공부에 정말 효과적이라는 게 맞다. 그 드라마를 통해 북송의 서사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아, 이 얘기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신유학의 절정기였던 송나라 때 불서(佛書)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 사랑받았다 해서 유학과 불교 관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건데… 하하. 암튼. 성리학자들과 불교가 완전 대척점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배신하듯, 저 불서가 북송시대 사대부들의 교양서였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사실, 북송시대 성리학자들과 불교는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고 한다. 이 시기 불교의 세속화는 극에 달했다고 하니. 오죽하면 불교가 세속화 되지 않았으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성리학도 없었을 거라는 말까지 있겠나. 

북송 시기, 덕망 높은 고승들은 사대부들 못지않게 세상일에 아주 관심이 지대하셨단다. 그것이 불교를 널리 전파하기 위함이었다고는 하나, 아무튼 이로 인해 불교도들과 관리가 된 사대부들 간의 밀착된 관계가 송대의 정치 문화에서 두드러진 현상이 된 건 맞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오늘 성어의 출전을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다시 단도직입으로 돌아와서 이 성어를 불교 가르침과 연결하면 ‘우리의 생각과 분별과 말에 거리낌이 없이 진실의 경계로 바로 들어감’으로 이해할 만하다. 불가에서 고승이 제자를 지도함에 있어서도 다른 수단과 방편 필요 없이 곧바로 심안(心眼)을 열어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 심안이라 함은 사물을 살펴 분별하는 능력인 게다. 

단도직입(單刀直入)은 그러니까 자신이 정한 목표에 확신을 갖고 이런저런 고민 없이 용맹하게 돌진하는 것을 뜻한다 하겠다. 이 성어가 대화에서 쓰이게 되면 부연설명 없이 요점만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때에 따라서는 군더더기는 제거한 핵심만 전달하는 글을 묘사할 때도 사용된다. 이쯤 되면 예전에 한 번 공부했던 ‘거두절미(去頭截尾)’가 떠올라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대화할 때, 매사에 너무 자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건 선호하지 않는다. 내겐 이 사자성어에 대한 편견이 존재함이 분명하다. 이 성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치고 이 단어 뒤에 숨지 않는 경우를 잘 보지 못했으므로. 사실 이 성어의 의미는 얼마나 좋으냐 말이다. 쓸데없이 사설이 길어질 일도 없고 얼마나 효율적인가 말이다. 하지만, 희한하게 이 단어의 남용은 무고한 사람에게 상처주기 십상이라는 거다. 일반화하는 건 아니나 대체로 이 말에 기대어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선을 넘는다. 이것만 아니라면 단도직입이라는 단어 자체로는 너무도 멋진 의미일 테다.

거두절미 때도 그랬지만 이번 단도직입도 맥락에 따라 정말 다양하게 읽히고 해석될 수 있는 성어다. 우리는 이 성어를 쓸 때 과연 어떤 의도로 쓰고 있는지 한 번쯤은 자신의 언어습관을 돌아봐도 좋으리라. 진지한 반성이라기보다 사람들과의 따뜻한 관계를 위한 대화법의 가벼운 점검 차원으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