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괜찮게 살아내는 법

믿기지 않겠지만/갈등이나/고통 없이/평탄하게/살아가는 사람들이/정말 있다./그들은 잘 차려입고/잘 먹고, 잘 잔다./그리고/가정생활에/만족한다./슬픔에 잠길 때도/있지만/대체로/마음이 평안하고/가끔은 끝내주게/행복하기까지 하다./죽을 때도 마찬가지라./대개 자다가 죽는 것으로/수월하게 세상을 마감한다.

믿기지/않겠지만/그런 사람들이 정말/ 존재한다.

나는/그런 부류는 아니다./천만에, 아니고말고./나는 그런 부류와/거리가 멀어도/한참 멀지만/그들은 엄연히/존재한다.

나는 여기/존재하고.

이 시는 찰스 부코스키(1920.8.16~1994.3.9)의 《창작 수업》에 나오는 시다. 하지만 내가 부코스키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책은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이었다. 지금도 그의 너무도 솔직한 단상들은 한 번씩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런데 어제는 나의 찐친구, 멋진 그녀와 와인을 마시면서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와인이 찰스를 소환한 밤…

이 시의 압권은 아무래도 제목이지 싶다. ‘정말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이런 마음으로 시를 다 읽고 나중에 제목을 보게 된 케이스랄까. 제목이 무려 〈외계인들〉… 이 제목이 내 눈에 들어온 순간 정말 허탈하게 웃었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왠지 위안이 됐었던 기억. 참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우리는 아주 엉뚱한 데서 위로받기도 한다. 인간의 나약함일까? 아니다. 그저 우리 삶이 그런 거다. 저런 완벽한 생은 없다고 시인은 말하고 싶었던 게다. 그 진심이 우리를 위로한 거고. 그런 게 아니었을까?

우리 생이라는 게 다 나름의 십자가 하나씩 지고 가는 여정이라는 걸 확인받게 될 때 나의 고단함을 조금은 덜 억울해 해도 되겠다 싶은 거…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네. 다 그렇게 사네… 그렇구나. 다 똑같구나.’ 하고 말이다. 그래, 그런 거다. 찰스가 시를 통해 그려본 저 완벽한 삶을 사는 자들은 여기엔 진정 없을 테니… 있다면 외계인이 맞을 게다.

외계인이 아닌 우리 인간 세상은 또 다른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이 밝았고 어느새 정오… 하루하루가 특별할 것 없이 이렇게 우리의 일상은 흐르고 있다. 보통의 하루를 매일매일 묵묵히 쌓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다. 알베르 카뮈는 철학 에세이《시지프의 신화》첫 부분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살던 우리가 어느 날 ‘왜’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그때부터 인간은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고개를 빼꼼 드는 생각.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내가 왜 매일 이 길을 이렇게 걷고 있는 걸까?’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유의미한 세계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면서 ‘왜?’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일상의 세계가 갑자기 붕괴되는 순간이다. 지금까지 의미 있었던 이 세계의 일상이 어느 날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지는 거다. 갑자기 권태감이 찾아오고…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일상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그 순간 이 세계는 무의미한 세계로 바뀐다. 그렇게 무로 변한 이 세계에서 나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이방인으로서 느끼게 되는 이 감정이 부조리다.

우리 인간은 그런 존재다. 세계에 대한 낯섦,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들… 우리 앞에는 건널 수 없는 강, 허물지 못하는 벽이 늘 놓여있다. 알베르 카뮈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부조리한 인간의 핵심이 뭐란 말이냐. 이 세계는 아니, 사회제도는, 더 좁게 타인은 결코 인간의 실존에 대한 이해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것. 그 어떤 진리도 그 어떤 것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내 실존은 내가 짊어져야 한다. 다행인 건, 인간은 이런 부조리한 세계에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문득문득 느껴지는 내 안의 이 부조리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삶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믿는다. 그러니 나는 또 내게 주어진 이 보통의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