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멋졌다.

참 괜찮은 그녀에 홀릭!

철학서를 이렇게만 재밌게 쓴다면 철학하겠다는 사람이 엄청 늘 것도 같다. 책을 잡은 뒤 당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마법에 걸린 게 분명하다. ‘웃음이 동반되지 않은 진리는 진짜 진리라 할 수 없다 ‘고 한 니체의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중국의 한 여성 철학자가 사유와 웃음을 기막히게 버무린 철학론에 밤을 꼴딱 새웠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찐우정(? 나도 유행어 아오)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했다.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의 위트 넘치는 문체로 읽는 그들 동지적 인연은 새로웠다. 마르크스는 평생 정식 직업도 없이 살았지만 위대한 사상가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그의 성공 뒤에는 남편을 묵묵하게 내조했던 멋진 그녀 예니가 있었다. 그리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친구 엥겔스가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이 둘은 닮은 듯 참 많이 달랐다.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리라. 뜻을 같이 하는 친구의 재능을 인정해주고 평생 변치 않았던 의리파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사생아 문제에서조차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오, 예니, 그건 오해요. 그 아이는 내 아이요.” 아, 이토록 눈물겨운 우정이라니(이 한 마디로 빵 터지게 만든 그녀에게 감사를!!).

그녀는 이 둘의 우정을 중국의 관중과 포숙아의 관계에 비유했다. 관포지교. 마르크스가 관중이고 엥겔스가 포숙아렸다(전적으로 동감하오).《사기열전》을 공부할 때부터 포숙아의 사람됨을 사랑했었다. 그의 진중하고 여일함이 좋았다. 친구의 허물까지도 끌어안고 비난하지 않는 그의 넉넉함이 좋았다. 엥겔스가 딱 그랬다. 

200년 전을 살았던 두 남자의 우정을 보면서 지금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친구를 떠올렸다.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녀. 엥겔스만큼이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의 베프다. 자신감을 잃고 세상에 나오기를 두려워하는 친구의 가장 눈부시게 빛났던 순간을 함께 떠올려주며 용기를 주었던 친구.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나는 그녀의 노후를 책임지기로 했다. 지금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게 내 마음뿐이므로. 나는 다시 열심히 살기로 했다. 자기 속 알아주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그 친구를 거둬야 하기에. 이토록 기쁜 사명이라니. 자신의 노후를 책임지라는 미션으로 친구를 살게 하는 그녀. 멋진 그녀, 내 찐친구다. 

사람이 살면서 어찌 늘 웃게 되는 좋은 일만 있을 수 있겠나. 누구나 좌절 속에서 절망하며 실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과정이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는 건 늘 곁을 지키며 함께 견뎌주는 든든한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가 내 편으로 남아있는 한 제 아무리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용기 낼 수 있으리라. 문득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친구에게 고마웠노라 인사하고 싶어졌다. 그녀가 나와 함께 해주었기에 지금 내가 여기,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다시 살아내고 있는 것이리라.

“친구야,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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