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법칙

어느 날 오후, 어딘가를 바삐 걸어가던 나는 빨간불에 발이 묶여 횡단보도 앞에 서있었다. 초록불로 나를 호위하지 않는 야속한 신호등만 타박하면서… 여우비가 온 끝이라 아스팔트 타르의 검은빛이 유난히 또렷하다. 끓어오르는 지열 때문에 소나기가 지나간 아스팔트에는 수증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위로 부서지던 햇빛 사이로 옷고름 같은 무지개가 살짝 걸렸다 사라졌다. 겨우 1분여 남짓한 시간 동안 내 시선 끝에 걸린 풍경, 그리고 그로 인해 남은 단상이 나를 통해 응축된 그 장면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 콕 박혔다.

그리고 또 다른 어느 날 오후, 이런저런 소소한 근심들로 인해 마음이 짓눌린 채 멍하니 앉아있을 때, 그 장면이 홀연히 나에게 돌아왔다. 당장 처리해야 할 그 많은 일들을 밀쳐내고 의식 저 밑바닥으로부터 침투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무지개는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편린들을 바라보고 객관화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찬란하게 부서지던 무지개를 떠올리던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 끈덕지게 달라붙어있던 근심조차도 나를 공격하지 못하고 침묵해야만 했다(알랭 드 보통이 말했던 시간의 점이 바로 이런 순간이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나의 역사가 되어버린 순간순간의 장면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내 앞에 펼쳐진 현실적인 걱정에 잠시나마 ‘허허’하는 웃음으로 응대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였다. 그리 대단하지도 또 거창하지도 않지만 이 삶을 사랑하고 묵묵하게 살아내야 할 이유를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순간, 그동안 사람에 대한 여러 복잡한 생각들로 홀로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짐을 느꼈다. 

장작불을 잘 유지하는 아주 쉬운 원칙을 아는가? 두 개의 장작을 서로 온기가 느껴질 만큼 가까이 두되, 숨을 쉴 만큼은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이 원칙은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방의 세계를 인정해주는 그 자그마한 배려, 그 티 안 나는 작은 거리를 유지하며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모든 좋은 관계로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나와 참 많이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그들이 가진 다양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그들’에서 진정한 ‘우리’가 되는 게 이 세계의 법칙임을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나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상처 입는 능력도 감퇴한다고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단지 내 자신을 돌아보면 갈수록 내 안의 나이브한 감수성이 마모된 듯한 느낌을 한 번씩 알아챌 뿐이다. 그것은 바로 내 나름대로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지 않으려는 자기방어기제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것을 나이를 먹으면서 인간이 뻔뻔스러워진 이유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나는 내 주위의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상처 받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워가고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