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영화보기를 게을리했다. 아니 의도적이었다기보다는 다른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고 해두자. 그러다가 오랜만에 보게 된 한 편의 영화가 그동안 방치해뒀던 블로그에 들어오게 한다. 뭐 거창한 리뷰는 아닐지라도 영화에 대한 단상을 그저 가볍게 끄적이고 싶은 마음이랄까.
한 주의 수업이 끝난 지난 금요일 밤, 뭔지 모를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 한 편을 골랐다. 제목은 <돈 룩 업 don’t look up>. 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캐스팅이 어마어마하다. 영화에 대한 별다른 정보 없이 연기 잘한다는 배우는 다 나온 것 같은 그 스케일에 압도되어 일단 클릭.
영화는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가 태양계 내의 궤도를 돌고 있는 혜성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의 담당 교수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혜성이 지구와 직접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고 대통령(메릴 스트립)에게 보고하고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다. 민디 박사와 케이트는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혜성이 다가오는, 지구를 멸망으로 이끌지도 모를 이 위급한 상황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언론 투어에 나서며 세상에 외쳐보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연임에만 혈안이 된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정치권은 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자신들의 욕망에 이용하기까지 한다. 혜성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단 6개월, 그럼에도 정치권과 유착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기업과 팩트 체크라는 책무를 저버린 채 이런 기업과 정치권의 입맛에 맞는 방송만을 위해 존재하는 언론, 영화는 이들을 블랙코미디라는 형식을 빌려 신랄하게 풍자한다.
분초를 다투며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의 바다에서 SNS에 푹 빠져있는 초연결 시대에 정작 이 중요한 뉴스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제발 저 하늘을 올려다보고 다가오는 위기에 대처하자는 룩 업(look up) 파와 정부가 괜찮다는데 왜 자꾸 없는 사실로 미국을 분열시키려 하느냐고 반박하는 돈 룩 업(don’t look up) 파는 극명하게 두 파로 나뉘어 대립한다. 그 과정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대중들의 반응은 마치 아수라장의 한가운데서 질식할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답답해서 말이다.
영화는 혜성 충돌로 인한 지구 종말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보여주었지만 우리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것이 결코 우리와 무관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근한 예로 기후변화 관련 뉴스가 그렇게 많이 쏟아지는데 그것을 듣기 싫어하고 그래서 그것이 사실이 아니며 과장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영화를 만든 아담 맥케이 감독이 공공연하게 기후 위기에 관한 의견을 개진해왔던 사람이라는 점에서 지구로 돌진해오는 혜성은 어쩌면 기후 위기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감독은 기후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비극적인 사건들 앞에서 인류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 게 아닐까 싶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과연 얼마나 미디어나 책에서 흘러나오는 과학적 진실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과학자들이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 변화, 그리고 필연적으로 다가올 지구의 멸망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감독은 결국 우리 일상에서 해야 할 최소한의 노력도 안 하는 현실을 좀 들여다보자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우리 모두가 다 죽게 된다는 경고 말이다.
한 해를 정리하며 보게 된 이 영화가 또 한 번의 새해를 맞이하는 내 마음에 주는 울림은 정말 컸다.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정말 심각한 메시지로부터 전해진 이 울림이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이 나로 하여금 다시 쓰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일상에서 조그마한 변화라도 만들어보는 그런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구를 살리자는 그 거대한 담론에서 나 개인은 정말 미미하고 보잘 것 없지만, 그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성경에 “그 날이 오는데도 사람은 결혼하고 들에가서 김을 매고” 그냥 살아가는
하루를 살아간다고 표현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혜성이 오는걸 막을 수없고, 어떤게 그 순간을 보낼까.. 예전에 카트리나 태풍이 올때가 생각이 납니다. 이웃과 함께 서로 “준비 됬냐고 물어 봤는데”.. 결국은 뭘 우리가 준비하겠냐고..
정말 영화 마지막을 보며 얼마나 한숨이 나던지.. 진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뭔가.. 무력감이 밀려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