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 친구, 묵동에게

묵동, 안녕!

난 얼마 전에 여기 묵동으로 이사온 지오라고 해. 그 말인즉슨 이젠 나도 엄연한 중랑구 구민이라는 얘기지. 만나서 반가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 참, 네 이름, ‘묵동(墨洞)’말야.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인 ‘먹(墨)’을 이곳에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지? 또 순우리말로는 ‘먹골’이라고 한다지. 왠지 이 동네는, 너의 그 이름에서부터 선비의 정서인 묵향이 느껴지는 것 같네. 마치 선비의 서재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런가… 난 이사 오기로 결심한 그날부터 이곳 묵동이, 아니 네가 맘에 들더라.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또 어쩌면 그렇게 다들 정겨운 건지. 난 벌써 너무도 좋은 인연들이 생긴 것 같아 앞으로 이곳에서의 삶이 정말 기대가 되고 설레기까지 해.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그 힘은 뭘까?’ 하는 그런… 만약 최샘을 만나지 않았다면 과연 내가 묵동, 네게로 올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럼, 이제 내가 최샘과 재회한 얘기를 들려줄게. 우리 둘이 다시 만나게 된 그날, 난 묵동의 주민이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드네. 

8년 전, 우리 가족은 한국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독일로 이민을 떠났어. 그땐 정말 내가 다시 한국에 돌아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근데, 왜 독일이었냐고? 아니, 왜 이민을 갔느냐고? 독일은 축구의 나라잖아. 아… 그 얘기부터 해야겠다. 자, 그럼 우리 가족이 왜 독일로 이민을 가게 되었는지 나랑 함께 8년 전 그때로 시간여행 한 번 떠나볼까?

어느 추운 겨울날, 평소 말이 별로 없는 우리 둘째 솔이가 내게 물었어.

“엄마, 제가 축구선수로 성공하기를 정말로 바라세요?”

“당연하지. 너의 영웅 호날두처럼 멋진 선수가 되면 참 좋겠다. 그치?”

“그럼, 새벽에 깨울 때 저 안쓰러워하지 마세요. 제가 못 일어나도 계속 깨우세요. 습관만 되면 그 이후엔 혼자서 일어날 수 있어요. 새벽에 개인 운동을 안 하면 어릴 때 축구 시작한 애들과의 갭을 메울 방법이 없어요. 엄마가 도와주셔야 해요.” 

개인 운동을 나가게 새벽 4시에 깨워달라는 아들의 청 들어주는 걸 번번이 실패하고 있던 때였어.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에 차마 깨우지 못하고 이불만 덮어주고 나오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던 거지. 며칠간 그런 마음 약한 엄마를 묵묵히 보고만 있던 아들이 안 되겠던지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들려준 거야. 아이답지 않은 단호한 말투에서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순간 눈물이 왈칵하더라.

축구를 너무 늦게 시작한 탓에 축구부에서 적응하느라 고전하던 아들을 위한 선택이었어. 아이가 행복한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그 시작이었다는 얘기지. 축구를 늦게 시작했어도 경쟁이 아닌 그 자체를 즐기며 푸른 구장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기를 바랐던 거야. 내 진심의 8할은 그랬어. 그래서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면 그다음 목적지는 독일이었으면 했어.‘전차군단의 나라’,‘축구의 종주국’ 독일은 축구선수로서의 아이 미래와 직결되는 기회의 땅이자 행복한 축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어.

그런데 말이지. 인생은 참 모를 일이더라. 뭐가 옳은 선택인지 그 순간 알아챌 수 있다면 삶이 너무 무미건조해지려나? 그래서 인간에게는 시행착오라는 아픈 과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삶이 주어진 걸까. 그러니 후회는 없어. 그 시간도 분명 내 삶에서 반드시 있어야만 했던 중요한 순간이었음을 알기 때문이지. 내 생의 많은 부분을 채워줬던 그 아픈 조각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있을 수 없을 테니. 슬픔은 사랑을 하는 대가라고 하더라. 그러니 내 마음이 슬프다한들 뭐 그리 대수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의외로 참 멋진 구석이 있더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아 허방을 헤매던 그 와중에도 어떤 방법으로든 가르침을 주니 말이야. 그건 바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는 거야. 독일에서 내 인생의 격변기라 할 만큼 힘든 시기를 겪고 돌아와 다시 만난 최샘이 이렇게 나를 묵동, 너에게 데려다준 거야. 이사는 해야 하는데, 그저 일상을 살아내느라 바쁘기만 했던 나, 그런 나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으시고, 최샘은 자신이 직접 부동산 사장님과 함께 나의 보금자리를 찾아봐주셨어. 그 결과로 내가 지금 이렇게 너의 품 안에 있는 거란다. 

묵동! 난 네가 좋아. 네가 품고 있는 이곳 묵동은….

이 동네를 걷다 보면 내 눈에 들어오는 파란 하늘의 흰 구름도, 길가에 우거진 푸른 나무도,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만나는 정겨운 사람들의 웃음도 좋아. 묵동, 너의 이 길을 걷는 동안 문득문득 차오르는 ‘나 지금 행복한가 봐!’라는 이 낯선 느낌이 날 행복하게 해. 네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 덕분이란 걸 알아. 그래서 이렇게 감사 편지를 쓰기로 결심한 거란다. 

묵동, 앞으로 나 여기서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어. 네가 꼭 나랑 함께 해줬으면 해. 그래줄 거지? 지금 이 순간, 나를 감싸고 있는 이 정적마저도 감사하다. 

내 생에 가끔씩 ‘덜컹’ 하는 선로이탈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다시 일상적 삶에 돌아올 수밖에 없겠지. 지금처럼 말이지. 지금 나를 안아주는 듯한 이 공기의 미세한 떨림이 마치 내게 정말 그렇다고 속삭이는 것만 같아. 이 세상은 참 많이 낡았고, 또 우리를 슬프게도 한다고. 그것도 자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해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것만 같아. 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마주 보듯, 이 세상도 그렇게 바라보라고. 지금 이렇게 다정한 가르침을 전해주는 이 정적이 그래서 참 좋아. 봐봐. 저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어.

HAPPY TOMORROW…!!

그럼, 이제 우리도 그만 인사할까? 앞으로 잘 부탁해, 묵동아.

                             2023년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묵동의 한 식구가 된 지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