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_지혜는 오직 전사만을 사랑한다.

니체와의 토리노 데이트 6

지오: 말하고 보니 지금 우리는 철학하는 태도에 대한 얘기만 한 것 같네요. 진리가 뭔지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으셨습니다. 궁금합니다. 진리가 대체 뭔가요?

니오: 나도 궁금하군요. 진리가 뭐요?

지오: 아니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실까요? ㅎㅎ

니오: 솔직히 나는 여성을 잘 모르겠어요. 종잡을 수 없단 말입니다.

지오: 진리가 뭔지 말해 달랬는데 뜬금없이 여성을 잘 모르겠다니… 허허 참, 나는 니오를 정말 종잡을 수가 없군요.

니오: 여성은 하나의 모습이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성을 알려면 그녀가 드러내지 않은 모습까지도 다 볼 수 있어야 하지요. 여자들이 마음속 가장 은밀한 곳에서는 그 어떤 남자들보다도 더 회의적이라는 것은 나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그들은 현존재의 피상성을 그 본질이라고 믿고 있어요.

지오: 그들 누구요? 방금 그 말은 남자들이 여성의 피상적인 것만 보고 그것이 본질이라 믿는다는 뜻인가요?

니오: 그래요. 더 중요한 건, 모든 덕과 심오함은 그들에게 단지 이러한 진리를 덮어 가리는 것, 치부를 가리는 아주 바람직한 가리개에 불과하다는 거요. 결국 체면과 수치의 문제이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 거지요.

지오: 참 말씀 어렵게 하시네. 그치만 이해했어요. 그러니까 여성의 그 다층적인 모습이 다 진짜일 수 있는데, 철학자들은 그 피상성만을 본질로 착각하고 그 모든 덕과 심오함으로 치장하지만 정작 진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말이군요.

니오: 맞습니다. 진리가 철학자들에게 결코 잡히지 않는 건 그 속에 너무도 많은 모습들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철학자들은 그것을 단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하려 한다는 거죠. 그들의 진리탐구는 다채로운 감각의 혼란 위에 던진 창백하고 차디찬 회색빛의 개념망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지오: 그럼, 니오에게 진리는 다채로운 감각의 혼란? 그것을 여성에 비유했고. 맞나요? 그렇게 복잡다단한 진리를 하나의 개념으로 붙잡으려 하는 것은 독단이라는 말인 것 같은데…

니오: 그렇습니다. 진리는 ‘오랜 사용 후에 마모되어 감각적으로 무기력하게 된 은유’이며, ‘자신의 형상을 잃어버려서 이제 더 이상 동전으로가 아니라 금속으로 고려되는 동전’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환상 때문에 이 사실을 망각했다는 거요.

지오: 그쵸. 은유는 확실히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죠. 그래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거구요. 니오가 ‘진리는 은유’라고 한 건 결국 ‘진리는 이것이다’라고 한 마디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건가요? 난 그리 이해했는데. 그렇다면 진리를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하려고 하는 그 자체가 폭력이 될 수도 있겠네요.

이 대목에서 니체를 너무도 사랑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쟈크 데리다의 말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니체가 전통적인 남성 철학자들의 ‘개념’을 여성의 ‘은유’로 해체했다고 했으니 말이다. 니체가 철학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은유를 끌어온 이유는 ‘진리는 환상이요 허구’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그동안 똑똑하다 자부하는 철학자들이 켜켜이 쌓아 올린 ‘일의적 개념’에 맞서기 위해 그가 선택한 무기는 바로 ‘다의적 은유’였던 것이다. 

니오: 맞아요. 바로 그 말입니다. 결국 진리는 여성이고, 우리는 진리에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지오: 진리에 대한 니오의 생각을 들으니 왜 니오가 그토록 많은 철학자들을 상대로 독설을 쏟아냈는지 알 것도 같아요. 니오의 진리를 바라보는 그 사유 자체가 참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네요.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고정된 진리가 어딘가에 있고, 그 진리를 찾아 끊임없이 탐구에 정진하는 사람들을 철학자라고 불렀잖아요.

니오: 이해해주니 고맙군요. 나 이전의 철학자들이 다 그랬지요. 뭐 꼭 플라톤과 그의 추종자들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겠지만.

지오: 이미 다 말했거든요?.. 그렇게 속마음을 다 드러내니 욕을 먹죠.

니오: 사람들한테 오만하다는 욕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그러려니 해요. 그래도 내 생각을 알아주는 이가 있으니 그거면 됐소이다.

지오: 나는 니오의 팬이라 했잖아요. 내 말을 믿어야 할 겁니다.

니오: 믿소, 믿소. 안 믿으면 큰일 날 기세군. 


“아무 거리낌 없고, 조소적이며, 난폭하게 – 지혜는 우리에게 이런 것을 원한다. 지혜는 여성이며, 지혜는 언제나 오직 전사(戰士)만을 사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덕의 계보학》제3 논문)”


지오: 내친김에 하나 더 알고 갑시다. 니오의 책《도덕의 계보학》제3 논문 도입부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지혜는 여성이며, 지혜는 언제나 전사만을 사랑한다.’ 이 말은 어찌 이해해야 하나요? 여기서 전사가 가리키는 게 누구죠? 혹시 니오?

니오: 아, 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용한 거?

지오: 아마 그럴 거예요. 바로 그 책에서 인용한 건데, 거기서 ‘전사’는 꼭 니오 자신을 말하는 것 같거든요.

‘전사’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바는 ‘전쟁’이다. 니오가 자신을 전사라고 봤다는 건 누군가와의 전쟁을 예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지혜가 사랑하는 전사라니. 용맹함에 지혜까지 겸비한 천하무적의 전사가 되어 그가 싸우고자 했던 대상이 무엇인지 그게 궁금해진다.  

니오: 내가 전사처럼 보이오? 그럼 나라고 해둡시다. 하하.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이 진리를 제대로 대하지 못했으니 하는 말인데, 나는 진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때론 비웃기도 해보고 때론 난폭하게 그리 대하고 싶다오. 지혜는 우리에게 이런 것을 원하거든.

지오: 방점은 ‘지혜는 오직 전사만을 사랑한다’에 찍히는 것 같은데… 안 그런가요? 여성인 지혜는 자신을 그렇게 막 대해주는 전사를 사랑한다니… 그 모순되는 심오한 의미를 더 캐묻고 싶지만 그보다 전사가 되어서 누구와 싸우고 싶은 건지 그게 더 궁금하니 원… 

니체가 싸우고자 했던 건 철학자들의 진리에 대한 환상이었다. 특히 플라톤이 주장한 ‘이데아와 현상’, ‘본질과 가상’이라는 이원론과 그렇게 자명한 진리가 되어버린 이분법의 사상적 토대에서 자라난 기독교(선과 악, 천국과 지옥)와 얽힌 전통적 관습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넘어야 할 그 성은 너무 높고 또 너무도 견고했다. 그러니 지혜의 여신이 없다면, 그녀의 가호가 없이는 애초에 불가능한 게임이었다. 니체의 비장함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지오: 암튼 좋아요. 그러고 보면 니오의 책에는 여성에 대한 은유가 유난히 많은 것 같아요. 때론 이상한 말을 해서 여성들 뒷목 잡게도 하고 말이죠. 글을 읽다 보면 니오의 여성에 대한 양가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뭐 할머니, 엄마, 누이 등 여자 가족들에게만 둘러싸여 자랐던 성장배경도 한몫했겠다 싶지만.

여성에 대한 다양한 말들을 쏟아냈던 자신을 돌아보는 건지… 생각이 또다시 멀리 간 듯 갑자기 말이 없어진 그를 보고 그녀는 금방 후회했다. 예민한 주제를 꺼낸 건가 싶고, 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내 입에서 또 무슨 험한 말이 나올까 걱정도 되고, 그 짧은 침묵이 그녀에게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하지만 반전의 사나이(?) 니오, 그는 스스로도 멋쩍은 듯 은근슬쩍 화제를 돌려보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니오: 참, 지오가 읽은 내 책들 중에 어떤 책이 제일 좋더이까?

지오: 니오의 책은 다 좋았지만…

니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지.

지오: 허허~ 지금 또 잘난 척을 하는 거요?

말은 그리 하면서도 그녀의 입가엔 다시 ‘난 잘났어’ 하는 모습으로 돌아온 이 사내의 자연스러운 잘난 척에 외려 안심의 미소가 번졌다. ‘그럼, 그렇지. 상처받을 그대가 아니거늘!’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니체를 바라보다가 이내 말을 잇는다.

지오: 이제 내 말 끊지 마요. 부탁할게요. 내가 최근에 새롭게 감동한 책은 바로《도덕의 계보학》, 이 책을 예전에 처음 읽었을 때는 잘 몰랐어요. 그런데 나이 들고 다시 읽어보니 정말 어마어마한 내용이 들어있더라구요. 같은 책도 독자가 살아온 경험치에 따라 이리 다르다니까.

니오: 맞아요. 그게 핵심이지요. 우리가 책을 읽을 때조차도 해석은 독자들 각자의 몫이니 얼마나 다양한 해석이 나오겠어요. 자, 들어봐요. 다양한 종류의 눈이 있어요. 스핑크스도 눈을 가지고 있어요. 따라서 다양한 종류가 있고, 그래서 어떠한 진리도 없지요.

지오: 뭐라는 거예요? 내가 오이디푸스도 아닌데 왜 갑자기 나한테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같은 말을? 대체 진리가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니오: 우리의 습관화된 관찰은 여러 현상들을 단일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부르지요. 또 이 사실들 사이에는 텅 빈 공간이 있다고 생각해서 각각의 사실들을 고립시키고. 하지만 나는 ‘사실은 없으며 있는 것은 오직 해석뿐’이라고 말하겠어요.

지오: 니오는 말을 참 어렵게 하네요. 철학자라 그런가? ㅎㅎ 객관적인 불변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 아닌가요?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사람들 각자의 관점에 따라 철두철미하게 조정되고 단순화되고 도식화되고 해석되어 있다는 그 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해요. 이게 그 유명한 니오의 ‘관점주의’가 아닙니까?

니오: 이 ‘관점주의’에 대한 주제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랄 거요. 이 세계는 해석이 아닌 게 없으니. 이 얘기는 이쯤 해두고. 그래,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다시 만난《도덕의 계보학》은 지오에게 어떤 느낌이었지요?

지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그리고 선인과 악인에 대한 니오의 분석은 충격이었어요. 평소 인간의 본성, 그리고 선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왔던 나로서는 니오의 그 완전히 다른 접근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니오: 거… 많이 아팠겠소.

지오: 많이 아팠소. ㅎㅎ 그래서 말인데 오늘 니오와 그런 얘기들을 나누고 싶어요. 일단 《선악의 저편》과 이 책의 논박서인 《도덕의 계보학》을 중심으로 선과 악에 대한 얘기로부터 위선이 정말 나쁘기만 한 건지, 그리고 자기기만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니오의 생각을 좀 들어봅시다.

3 thoughts on “6화_지혜는 오직 전사만을 사랑한다.”

  1. 왜 저는 제가 니오 보다 더 잘낫다고 생각이 들죠? 미쳤나봐요!,, 지오—저를 구해주세요 … 제 정신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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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니오의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이스라엘과 예수가 생각이 납니다. 유대민족에게 이스라엘은 항상 여성성으로 표현을합니다. 성경에서도그렇고 늘 뭔가 지키고 싶은것은 여성 성으로 표현을 합니다. 예수도 철저하게 자신이 혼자 일당 백으로 지켜낸자도 마리아 여성이었지요. 어떻게 보면,우리가 지키고 자하는 진리라는것은 여성의 생각의 복잡함이라기보다 여성이 가지고있는 육체적인 약함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지키고 알고 싶어하는 진리의 속성이 굳건하지도 않고 쉽게 무너지고 짖발필수있는 약함이라는거..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오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에게 진리는 사람이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된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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