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일차_중구난방衆口難防

우리가 자주 쓰는 성어 중에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여러 사람들이 제각각 자기 말만 하면서 떠들어댄다는 의미로 알고 있을 게다. 뭐… 그렇게들 쓰고 있지. 음… 그런데 만약 어떤 한 사람이 두서없이 이말 저말 하는 상황에서도 이 중구난방을 쓴다면? 엄밀히 말하면 그 용법은 적절치 않다. 정말? 우리는 때에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쓰기도 하는데, 이 성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되면 그게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리라. 

너무도 우리 귀에 익숙한 그 사자성어를 일단 해체해보자.

무리 중(衆), 입 구(口), 어려울 난(難), 막을 방()

‘중구(衆口)’는 말 그대로 ‘여러 사람의 입(말)’이 되시겠다. 그럼 ‘난방(難防)’은? 에헤, 보일러 난방 아니고… ‘막기 어렵다’는 뜻이쥐. 그러니까 이 성어의 1차적 해석은 ‘뭇 사람들의 말을 막기 어렵다’가 될 테다. 즉 여럿이 한꺼번에 마구 지껄이는 바람에 뭘 할 수가 없다는 그런 느낌인 거다. 뭔가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인 상황을 떠올려보라.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의견을 내세워 한 마디씩 한다면 합리적 조율이 쉽지 않을 터. 그런 경우에 여러 사람의 의견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옴을 형용하는 성어라고 이해해 두자그러니 한 사람이 이말 저말 떠드는 상황과는 다르겠쥐?

이 성어의 출전은 <국어(國語)> 인데, 이 책은 노나라의 죄구명(左丘明)이 중국 춘추시대 여덟 나라의 역사를 왕과 신하들의 좋은 말들을 중심으로 기록한 역사책이다. 제목이 왜 국어(國語)인지 알 수 있겠제? 참, 사마천이 실명한 좌구명이 지은 책이라고 했던 게 생각나누만. 눈이 안 보이는데 어찌 이런 책들을 썼을까나. 덕분에 그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때 당시 사람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참, 대단하다는 말 밖에. 

특기할 것은 <국어(國語)>에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는 완정한 단어 형태로 나온 건 아니고, 주(周)나라의 여왕(厲王)과 관련된 고사에서 착안해 비슷한 의미의 성어가 만들어진 경우라 하겠다. 그럼 그 이야기가 뭔지 궁금하제?

주(周)나라에 잔인하고 탐욕스럽기로 유명한 여왕(厲王)이라는 폭군이 있었더라. 그 누구라도 불만의 목소리를 낼라치면 곧장 잡아다 족치고 죽였으니 백성들이 을매나 무서웠겠나. 거의 공포정치 수준? 근데 그게 뭐 자랑이라고 신하를 불러다놓고 아무도 찍소리 못한다며 으스대는 꼴이라니. 화가 나도다. 음… 지금의 내 맘 같던 한 정치가가 있었으니, 이름하야 소공(召公)이렷다. 그는 주공(周公)과 함께 주(周)의 건국과 안정에 크게 기여하지 않았던가. 

그가 이런 말을 했더라.  

 “防民之口,甚于防川 …. ”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하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사옵니다.

하천의 물을 억지로 가두려다 그것이 실패해서 분출했을 때의 파괴력이란… 근데, 백성의 입을 막는 게 그것보다 더 어렵다잖은가. 그럼 여왕(厲王)이 겁도 나고 그래서 개과천선? 놉!! 대체로 이런 어리석은 군주들은 충신의 간언(諫言)에 절대 귀 기울이지 않지. 끝까지 정신 못 차리다가 결국 성난 백성들에게 쫓겨나지 않던가. 그게 바로 기원전 841년 일어난 ‘국인폭동(國人暴動)’이다. 이로 인해 14년 동안 천자(天子) 없이 공화정(共和政)이 실시되는 계기가 되었다지.

바로 저 고사의 내용에 기반해서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는 성어가 만들어졌다고는 하는데, 사실 중국에서는 잘 쓰이는 성어는 아니다. 오히려 저 8글자로 된 문장으로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더라. 또 우리나라에서 중구난방(衆口難防)이 쓰이는 맥락을 보면, 그 결이 조금 다른 것도 같다. 저 출전에서의 깊은 의미라기보다는 그저 사람들이 제각각 자기 말만 시끄럽게 떠든다는 의미가 더 강한 듯 보인다. 

이번 기회에 중구난방이 생겨나게 된 그 배경을 통해 사람들이 생각을 해봤으면 싶었다. 이 성어가 진정 전하고자 하는 그 의미를. 특히 한 나라의 리더라면 이 사자성어를 보며 꼭 가슴 깊이 새겼으면 싶다. 억눌린 국민의 분노가 쌓여 그것이 폭발했을 때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를.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했다는 소식 때문이었을까. 오늘 아침에 책장에 꽂혀 있던 소설 <소년이 온다>를 꺼내 다시 펼쳤드랬다. 80년 5월 광주의 시공간에서 벌어진 잔혹한 학살의 참상과 정면으로 마주한 한강의 소설을 말이다. 첫 페이지가 눈에 담기자마자 난 책장 앞에 주저앉아 그 자리에서 끝까지 다시 읽고야 말았다. 또 눈물이 나더라. 그렇게 많이 울며 읽었던 책이었는데… 다시 읽는데 뜨거운 눈물은 또 어김없이 흐르더라. 책을 덮고는 창밖을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모두가 열망하던 서울의 봄이 왔더라면 저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의 배경이 된 5·18이 일어났을까? 그 권력에의 욕망에 눈먼 자들로 인해 오지 않은 서울의 봄, 그리고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진 우리 굴곡진 현대사를 떠올리며 참 많이 슬프더라. 이런 날, 굳이 오늘의 성어가 중구난방(衆口難防)인 게 과연 우연일까. 하고픈 말이 내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 차오르는 주말 저녁이 또 이렇게 흘러간다.

1 thought on “65일차_중구난방衆口難防”

  1. 오늘은사자성어보다는 우리 샘의 첫 디지털 노마드의 입성을 축하나는 날… 그누구보다 지오의 세상을 향한 조심스러운 첫걸음을 우주의 누군가의 마음을 함께 담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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