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차_파죽지세破竹之勢

‘깨뜨릴 파(破 ), 대나무 죽(竹), 어조사 지(之), 기세 세(勢)’ 

파죽지세(破竹之勢)는 이 네 글자의 조합이다. ‘대나무를 쪼개다’는 뜻의 ‘파죽(破竹)’에 어조사 지(之)가 붙고 ‘기세 세(勢)’가 합류하니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나무가 쪼개지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이 성어는 설명 안 해도 금방 이해될 터. 대나무는 처음 땅에 나온 어린 줄기가 끝까지 자란단다. 그렇게 오래 자란 대나무 줄기의 단단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그래서 ‘대쪽 같은 사람’이란 말도 있지 않겠나. ‘대나무를 갈라낸 조각’을 뜻하는 ‘대쪽’이 ‘곧은 성미나 절개’의 비유적 표현이니까.

대나무는 너무 단단해서 쪼개기가 쉽지 않지만, 일단 첫 몇 마디만 가르고 나면 그 다음엔 그 결을 따라 단숨에 쭉쭉 쪼개진다. 그 모습은 마치 ‘일사천리로 일이 잘 풀리는 어떤 상황’을 연상시키지 않나. ‘적군으로 거침없이 공격해 들어가는 장면’도 오버랩되고 말이다. 그렇게 의미가 계속 확장되더니 ‘파죽지세’는 이제 ‘세력이 너무 강대해서 대적할 수 없음’을 비유할 때 쓰이는 표현이 된 거다. 

‘파죽지세’는 중국 진(晉)나라의 기록을 담은 역사서인 <진서(晉書)>의 ‘두예전(杜預傳)’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진(晉)나라는 국호는 진(晉)이지만 보통은 ‘동진(東晉)’시대나 진시황의 ‘진(秦)’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서진(西晉)’이라 불린다. 서진은 그러니까 중국 <삼국지>로 유명한 위·촉·오, 이 삼국을 통일한 사마염(司馬炎)이 세운 나라다. 

위·촉·오 삼국 중에서 세력이 가장 컸던 위(魏)나라가 촉(蜀)을 합병하고 삼국의 재통일을 노리고 있을 때, 위나라의 권신이었던 사마염이 스스로 제위에 올라 서진을 건국한다. 그리고 삼국 중 유일하게 남은 오(吳)나라와 대적하던 상황에서 오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마지막 작전회의가 열렸더랬다. 

많은 장수들이 여러 이유를 들며 당장 오나라를 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을 때, 단호박(?) 두예(杜預) 장군님이 앞으로 나서며 그러더란다. ‘지금 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대나무가 쪼개지는 듯한 기세<破竹之勢>란 말이다. 대나무는 한 번 쪼개지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칼만 대도 저절로 쪼개지지 않더냐.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겠다고? 그니까 빨리 진격하자고요.’ 캬~ 요래 했다는 거다.

이리하야 두예가 이끄는 진의 군대가 파죽지세로 오나라를 공격하여 결국 ‘유비·관우·장비·조조’의 삼국시대는 막을 내리고 천하를 재통일한 서진시대가 열렸더라는 얘기다. 이때 두예장군이 했던 저 말에서 ‘파죽지세’가 나왔단다.

얼마 전, 아시안 게임 관련 뉴스에서, 특히 우리나라 축구의 승전보를 전할 때 이 ‘파죽지세’라는 표현이 유독 눈에 많이 띄더라. 그 말인즉슨? 우리나라 축구가 거침없이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얘기. 그 빛나는 금메달은 우리의 것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기분 좋게 성어 공부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가. 

하나 더!

혹시 ‘모소대나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모소대나무는 땅에 심고 4년이 지날 때까지는 땅 위로 3cm밖에 자라지 않는단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이 대나무가 다 죽었다고 생각한다고. 하지만 그 다음해 5년째가 되면서 모소대나무는 하루에 30cm씩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해서 6주차가 되면 그 자리는 순식간에 울창하고 빽빽한 대나무 숲이 된단다. 

이런 특성에 주목한 많은 사람들이 ‘대기만성형’의 인재를 모소대나무에 비유하곤 한다. 순을 내기 전 먼저 땅속으로 뿌리내리고 사방으로 수백 미터를 뻗어나갔기 때문에 결국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폭풍처럼 자라나는 그 근성을 본 것이렷다. 그동안 대나무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땅속으로 열심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거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순간, 드디어 자신의 잠재력을 무한 발산하며 아주 짧은 시간에 아름드리 숲을 이루고 다른 생명들이 호흡하고 쉴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들어주는 모소대나무, 정말 멋지지 않은가.

우리는 늘 뭔가에 쫓기듯이 살고 있는 조급한 자신을 발견한다. 누가 강제하는 것도 아닌데도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늘 불안하고 초조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시도한 뭔가가 바로 결과를 내지 못하면 자책하며 무기력에 빠지기 일쑤고 그런 현실이 싫어 도망치기 바쁘다.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것 같고 저기 어딘가가 꼭 내가 가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막연함 속의 방황…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다. 이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 흔들릴 수밖에… 그렇게 흔들리며 사는 우리네 인생, 문득 모소대나무를 떠올려보는 이 시간, 그 묵묵함이 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뿌리를 내리고 4년 동안 3cm밖에 안 자라는 대나무라니. 그렇게 사람 속터지게 하다가 5년째가 되는 해에는 어쩐다고? 하루에 30cm씩 폭풍 성장해서 6주 만에 무려 15m 넘게 자란다잖나. 매일 그렇게 고군분투하지만 성과가 좀처럼 나오지 않아 속상한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지 않을까.

2 thoughts on “20일차_파죽지세破竹之勢”

  1. 파죽지세가 이런 뜻이였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오늘 또하나 너무 멋진 말을 배우고가네요.. 어원하고 말의 배경까지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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