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泣斬馬謖), 발음도 어렵고 말 자체도 참 생경한 단어다. 그런데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성어가 뜬금없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귀에 자주 들릴 때가 있다. 그럼 꼭 유명한 정치인이 같이 언급되거나 혹은 기업인이 펴낸 책이 함께 인기를 얻거나 하더라. 그렇게 한 번씩 대중들에게 회자되는 일이 있다. 참 신기한 건, 그렇게 한 번 떠들썩하고 나면 그토록 어렵고 낯설기만 하던 사자성어가 어느새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거다. 그게 바로 미디어의 힘이다.
울 읍(泣), 벨 참(斬), 말 마(馬), 일어날 속(謖)
‘울면서 마속(馬謖)의 목을 벤다’는 뜻의 이 성어도 언젠가 한 번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구체적인 상황은 잊었지만. 이 성어가 대체 무슨 뜻이기에? 음… 아주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지. ‘대의 앞에서 사사로운 정은 가차 없이 끊어내야 한다’는 세상 멋진 뜻 말이다. 즉 공적인 업무 처리와 법 적용에 있어 공정성과 과단성이 요구됨을 의미한다 하겠다.
이 성어는 중국 명나라 때 나관중이 쓴 고전역사소설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속 제갈량(諸葛亮)과 그의 부하 마속(馬謖)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삼국지의 수퍼스타 제갈량의 자(字)는 ‘공명(孔明)’, 호(號)는 ‘와룡(臥龍)’이다. 그래서 자를 포함해서 ‘제갈공명’이라고도 부르고, ‘와룡선생’이라는 호로도 불린다. 촉나라(촉한:蜀漢)를 세운 유비(劉備)가 제갈량의 명성을 듣고 그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직접 찾아’가 자신의 책사(策士)로 기용한 것은 너무 유명한 이야기다. 여기서 만들어진 고사성어가 바로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아니던가. 인재를 얻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겠쥬?
그렇게 유비와 인연을 맺은 제갈량이 촉한(蜀漢)의 승상이 되어 위(魏)나라를 공격할 무렵의 일이다. 제갈량이 위나라와의 대전에서 반드시 사수해야만 하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군량 보급의 요충지인 가정(街亭)이었더라. 가정을 수비할 장수가 필요하던 차에 마속이 자청하고 나서자, 평소 그에 대한 신뢰가 상당했던 제갈량은 이내 허락하고 구체적인 전략을 짜기에 이른다.하지만, 말이 좀 과장되다 싶고 공명심도 있던 마속은 제갈량의 지시를 듣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산꼭대기에 진을 쳤다가 결국 그의 부대는 궤멸하고 만다.
마속이 가정(街亭)을 잃자, 제갈량은 전진할 곳을 잃어 한중(漢中)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제1차 북벌은 실패로 돌아간다. 제갈량은 패배의 화근이 된 마속을 군법에 회부하고 참수 조치한다. 많은 장수들과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개인의 재능이나 친분보다 군율이 먼저라는 원칙하에 마속의 참수를 강행한다. 이 고사에서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벤다’는 성어가 나온 것이다.
“마속이 인재임을 모르는 바 아니나 군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하오. 그를 용서하면 군대의 질서가 서지 않아 더 큰 손실을 초래할 거요. 인재일수록 더 엄벌해야 대의가 서지 않겠소?”
캬~ 역쉬 와룡선생, 멋짐 폭발!
제갈량은 정책을 결정하거나 전투 계획을 세울 때 항상 공개적으로 중지(衆智)를 모으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능했단다. 공개 진행한 이상 모든 후처리도 그에 걸맞게 늘 공평하고 공정했다고. 평가에 있어 자신도 예외가 될 수 없었으니. 실제로 마속을 벌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지위도 3등급이나 강등시켰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리.
‘제갈공명’ 하면 가장 먼저 ‘책사(策士)’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그는 뛰어난 지략과 예리한 판단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삶의 모든 문제에 해결책을 미리 알고 뚝딱 내놓는 천재? 알고 보니 그의 인생 역정 역시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더라. 늘 막중한 책임감 속에서 고뇌와 걱정을 안고 살았던 보통 사람이었을 뿐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가 훌륭한 정책 결정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유감없이 보여준 ‘읍참마속’이 그래서 더 각별해진다.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를 담고 있기에 더더욱.
사람의 마음을 얻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을 바탕으로 정치를 펼쳤던 제갈량! 그는 진정 공정의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엄청난 신뢰자본을 쌓았던 너무도 훌륭한 지도자였다. 지금까지도 그가 사랑받는 이유이리라.
마이클 샌델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의 공정과 제갈량의 공정의 차이가 궁금해지네요.. 동.서양간의 공정의 의미론적 차이가 있을 듯 해요
마이클 샌델교수의 공정은 대체로 능력주의 비판과 기회의 균등 측면에서 접근하는 공정인 것 같고..
읍참마속에서의 공정은 좀더 법과 규율의 적용이 공평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 같아요. 공과 사의 관점에서 시작된 성어라서 어디에 포커싱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수 있을 듯요. 결국 크게 보면 같은 얘기를 관점을 달리해서 설명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구요.
재갈공명이라는 이름은 들었지만 이렇게 훌륭한 분이였는지는 몰랐습니다. 읍참마속..이라는 말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공직자들은 늘 이 글을 마음에 새겨야겟습니다.
ㅎㅎ 삼국지연의 최고의 스타인 제갈공명~ 물론 소설이니까 사실과 다른 에피소드도 있지만 ㅎㅎ 그럼에도 대체로 좋은 평가가 압도적인 인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