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_토리노의 말

니체와의 토리노 데이트 1

오늘부터 새롭게 발행하는 매거진의 이름은 ‘니오지오의 티키타카’다. 여기서 ‘니오’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부르는 애칭쯤으로 생각하면 될까. 지오가 지은 거다. ‘지오’와 라임을 맞추기 위한 것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냥 발음하기 좋아서 ‘니오지오~’ ㅎㅎ

그 유명한 장면(내게만 그토록 강렬할지도ㅠㅠ), 토리노 광장에서 마부에게 채찍질 당하는 말을 부둥켜안고 울었던 니체의 일화. 너무도 애잔한 그 풍경. 결코 무심해질 수 없는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 니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이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지오의 상상을 끄적이다.

<토리노의 말>

“1889년 1월 3일 토리노, 카를로 알베르토 거리 6번지의 집에서 외출을 나선 프리드리히 니체는 6번 문밖으로 나선다. 산책을 하거나 우편물을 가지러 갈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마부가 말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말은 움직일 줄 몰랐다. 마부 이름이 뭐였더라? 주세페, 카를로, 에토레? 하여간 마부는 참다못해 채찍을 휘두르고 만다. 니체는 인파로 다가가서 분노로 미쳐 날뛰는 마부의 잔혹한 행동을 말리려고 한다. 건장한 체구의 니체가 갑자기 마차로 뛰어들어 말의 목에 팔을 두르더니 흐느낀다. 이웃이 그를 집으로 데려갔고 그는 침대에서 이틀을 꼬박 조용히 누워 있다가 비로소 몇 마디 마지막 말을 웅얼거린다. “어머니, 전 바보였어요.” 그 후로 10년 동안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얌전하게 정신 나간 상태로 누워 있는다. 그 토리노의 말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영화 《토리노의 말》중에서-

이 에피소드는 헝가리 감독 벨라 타르의 마지막 작품인 2011년 영화 《토리노의 말》 도입부에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이다. 바로 여기에 나오는 사건을 기점으로 니체의 정신적 암흑기가 시작되었다고들 한다. 과연 그날 이후, 니체는 오락가락 하는 정신을 끌어안고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완벽하게 고립된 혼자만의 세계에서 살다가 그 생을 마감했다. 

혹자는 토리노의 마을 중심가에서 ‘인류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니체의 광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 광장에서 채찍질 당하던 말을 부둥켜안고 흐느껴 울었던 니체, 흑백사진의 한 장면 속 니체의 눈물은 그렇게 지오의 기억 한 편에 강렬하게 자리 잡았다.

“Cogito ergo sum(코기도 에르고 숨)”,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에 대해 말하면서 인간만이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에게 동물은 영혼도 없는 하나의 자동기계에 불과했으며 동물의 신음소리는 고장 난 장치의 삐걱거림일 뿐이었다. 

니체는 그 당시 유럽인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동물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리”에 거부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니체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연민의 감정이 그 순간에 찾아왔던 걸까? 어쩌면 밀란 쿤데라의 진단처럼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데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니체만이 알고 있으리라. 

정말 그랬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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