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편견에 대하여

‘지식’과 ‘편견’, 이렇게 두 단어를 나란히 사이좋게 놓고 보니 문득 이 둘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과연 얘네 둘은 같은 편일까, 아님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적일까? 혹자는 경험의 올바른 누적은 지식이 되고, 경험의 잘못된 누적은 편견이 된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그 ‘올바르고 잘못된’의 기준은 뭘까? 아니, 그 기준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질문하고 있는 나는 회의주의자인가? ㅎㅎ

그래, 좋다. 지식과 편견의 얘기를 그러면 ‘회의주의자’의 어원으로부터 시작해보자. 일단 ‘회의주의(scepticism)’라는 말은 그리스어 ‘skeptomai’에서 유래했다. ‘주의 깊게 살핀다’는 뜻이다. 그 단어에서 ‘skeptikos’라는 ‘회의주의자’가 왔다. 당연히 그 의미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탐구하는 사람’일 테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오랫동안 관찰해본 결과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다 보니 그들에게는 ‘의심하는 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 것일 게다.

인류의 지성사에서 회의주의가 생겨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간은 매순간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이 회의주의의 뿌리 찾기 끝에서 만난 이가 바로 그리스의 피론이다. ‘피론주의’, ‘피론학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피론은 인도에 다녀온 후 철학자로서의 삶이 시작됐다지.

‘마음의 평화’에 천착했던 그가 지향한 삶의 태도는 판단을 유보한 채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거였다. 그의 철학적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그럴 만 했네’ 싶다. 사물들의 불확정성과 유동성에 주목한 그는 집요한 탐구 끝에 진리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식이라는 것은 성립 불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그는 판단중지, 즉 에포케(Epoche)를 선언했단다. 이것은 끊임없이 물음을 계속하는 유연한 사고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가 철학적 명제나 논변을 대하는 방법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대립되는 명제를 제시함으로써 판단을 유보하는 거였다. 그 어떤 지식이나 진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관조하는 삶이야말로 평정에 이르는 길이라면서 말이다. 인도에서 만난 현자의 영향 때문일까. 확실히 그의 사상엔 동양적 색채가 묻어난다.

피론이 감행한 ‘판단중지’, ‘에포케(epokhe)는 그러니까 ‘나는 아직 모른다’는 뜻이렷다. 만약 이 ‘에포케’라는 옆 자리에 짝꿍을 만들어 준다면 ‘크세주(Que sais-je)’가 제격이지 싶다. ‘에포케’와 ‘크세주’! 이렇게~^.^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뜻의 ‘크세주’는 우리가 ‘수필’이라 부르는 ‘에세이’의 시초인 『에세 Essai』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 『에세 Essai』는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몽테뉴의 『수상록』이라고 알려진 문집의 원제목이다. 이 책에서 그는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렇게 묻는다. ‘세계를 대하는 나의 인식이 맞는 것인가’라고. 이 또한 회의주의의 표명인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의심한다’는 말조차도 하나의 단정을 내리는 결과가 된다고. 그러니 마땅히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그래야 모순에 빠지지 않는다나. ‘내가 안다’고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일 게다.

판단이라는 것은 판단하는 주체나 판단되는 대상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음이다. 모든 판단은 상대적이라는 거다. 이러한 상대주의는 철학이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나타나는 생각의 경향이다. 상대성이 나타나는 문제들은 주로 올바른 인식, 좋은 지식체계와 같은 ‘인간적인 것들’이다. 삶의 의미로부터 인간적인 주제들에서 객관적인 답을 찾고자 했던 소크라테스 계보의 주류철학은 상대주의와의 싸움 속에서 발전해왔다. 소위 주류철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이성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만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을 해야하고 상대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객관(절대)주의와의 대립 속에서 상대주의나 회의주의는 사변적이라는 비판으로부터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회의주의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회색분자’로 비춰지기도 했다. 나 역시 그런 회색분자로 분류되기는 싫었다. 왠지 비겁해보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절대적 진리는 없다’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세계는 ‘모든 것이 다 해석’일 뿐이라는 말이 나를 설득시켰기 때문이리라.

정말 그래서인가. 회의주의적 삶의 태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떤 것도 쉽게 믿지 않고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도 원인과 결과를 먼저 따져보려는 노력이 분명 필요해 보인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판단하려 애쓰는 와중에도 언제든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이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만들 테니. 세상의 그 많은 지식들을 향한 우리의 열망도 결국 자유롭기 위함이 아니던가.

불확정성으로부터의 자유! 우리가 불안한 것은 저 덤불숲 뒤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자유의 절대적 조건이 ‘앎’이요, 우리가 배움을 멈추지 않는 이유일 게다.

이 글의 서두에서 지식과 편견의 관계가 궁금했던 건 이 둘이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에 따라 믿고 싶은 대로 그렇게 그것들을 수시로 이용하고 있는지도. 지식은 언제든 편견이 될 수 있고, 편견 역시 수시로 지식의 외피를 두르고 나타나기도 한다. 비판 없이 지식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편견의 가능성을 잉태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옳다고 굳게 믿어버리는 순간, 그 지식은 신념이 되고 편견이 되며 결국 오만이 된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단다. 하지만,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잖은가. 비극이다.

인간의 불행 거의 대부분이 편견과 오만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새삼 의미심장해진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이 말은 나만이 옳다고 믿는 아집에서 벗어나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에포케’와 ‘크세주’, 이 두 단어는 공히 우리에게 ‘늘 스스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나는 과연 지식을 늘린다 하면서 내 안의 편견만을 갈고 닦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식의 역설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아닌지 늘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이다. 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아주 명료한 함의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판단하기보다 끊임없이 묻고 따져봐야 한다는 것. 그 어떤 새로운 생각도 내 안에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 말이 모순투성이고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 인간을 향한 묵직하고도 눈부신 일침처럼 꽂히는 이유이리라.

‘앎’에 관한 나의 추억 하나를 소환하며 이 글을 마쳐야 할 것 같다.

비에 젖는다는 것~

비가 참 많이도 온다. 그래서 난 차~암 좋다. 이런 날은 어김없이 창밖 풍경에 빠져들게 되는 마법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하염없이 퍼붓는 비를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비에 관한’ 특별한 추억 하나.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외대에 언어학 수업을 청강하러 갔던 날이다. 언어학 이론을 혼자 책을 읽으며 거의 독학하던 때였다. 맨땅에 헤딩하던 시기였달까? ‘언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무조건 읽고 보던 그런 때였다.

그럼에도 혼자 하는 이론 공부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그 난해한 이론들을 따라잡기 위한 나의 무모한 도전은 결국 공부에 대한 자신감까지 잃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혼자서 허방을 헤매며 절망하고 있을 즈음이었을 게다. 우연한 기회에 영문과 교수님의 대학원 수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 스스로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완전히 주눅이 든 채로…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그’들 틈에 끼어 수업을 들었던 기억.

그렇게 낯선 분위기에 잔뜩 위축되었던 나는 강의가 시작되면서부터 어느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혼자 책으로 읽을 때는 전혀 내 것이 되지 못하고 허공만을 부유하던 개념들이 마치 스펀지에 스며들 듯 하나 둘씩 내 안으로 흡수되는 느낌이랄까. 수업 내내 ‘앎의 환희’를 제대로 체험하며 그 수업과 나는 완벽하게 하나가 되고 있었다.

그 수업에 대한 나의 단상은…

교수님의 입을 통해 쏟아지던 그 수많은 단어들은 하나하나가 내 온몸을 따뜻하게 적시는 빗방울이었다. 그전까지 어렵기만 하던 그 언어학 개념들이 드디어 이해가 되기 시작하던 그 순간이 내겐 마치 들판에 서서 그 ‘개념’들로 내리는 비를 흠뻑 맞는 찰나와도 같았다. 그렇게 그날 그 강의실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언어학의 비’가 내리고 있었던 거다.

‘비에 젖는다는 건…’

내게는 그랬다. 내가 가장 절실하게 원하던 그 무언가가 완전한 내 것이 될 때 느끼는 그 환희와 동일시되는 그 무엇이었다.

p.s  히히… 박사과정 때 끄적인 이 메모를 보니 추억이 솔솔~ 내가 이런 마음으로 언어학 공부를 했었구나.                                               

비가 그리워진 아침에~^^ by 지오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