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애의 <시인의 집>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말이다. 《파우스트》 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한국의 괴테 전문가 전영애 서울대 명예 교수다. 몇 년 전, 나는 <시인의 집>을 통해 선생님을 만났더랬다. 이 책은 혹독한 삶 속에서 지독한 자기반성과 예민한 감각으로 시를 써내려간 시인의 집을 따라가며 기록한 에세이다. 《시인의 집》을 다 읽은 날 밤, 잠들지 못해 독백하듯 써내려간 메일에 답장을 주신 인연으로 그 다음날 여주의 ‘여백서원’으로 무작정 달려갔었다.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말없이 꼭 안아주셨다. 마치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어둑한 골목을 지나 내 집에 돌아와 안기던 엄마의 품처럼 참 따뜻했었다. 

선생님에게 글은 언제나 일단 삶을 감당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이었단다. 버거운 삶에 짓눌릴 때면 시인들이 써내려간 시구들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셨다고. 선생님은 시인이 걸었던 곳에 발자국을 얹어보면서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셨던 거다. 밀도 높은 사유 속에서 탄생한 그 아름답고 겸손한 문장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내 마음은 이미 위로받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선명하게 자기를 돌아보는 방법이 글쓰기임을 배웠다. 나와 선생님의 인연은 그 《시인의 집》에서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책 향기가 물씬 나던 멋진 서재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말을 좋아한다는 내 말에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시며 귀한 것을 보여주셨다. 1808년도 《파우스트》 초판본이었다. 200살이 넘은 나이의 《파우스트》는 누렇게 빛바랜 낡은 모습으로 비단 보자기에 고이 싸여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오래된 종이 냄새를 맡는 행복감이 얼마나 컸었던가. 선생님은 그 당시 독·한 대역 출간을 위해 《파우스트》 번역작업 중이시랬다. 그 연세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열정에 사뭇 숙연해졌던 기억. 나중에 독일 ‘괴테의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오셔서 우리 집을 찾아주셨을 때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로 바꾸게 된 계기를 들려주셨드랬다.

우리는 모두 좌절과 방황을 수없이 반복하며 살아간다.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고 의기소침할 때마다 내게 힘을 주던 문장이었다.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겠다. 다만 ‘방황’ 그 자체가 바로 우리가 노력하고 있음을 반증한다는 의미로 혼자 추측할 뿐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방황하고 쓰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방향성을 잃지 않으며 계속 나아갈 수만 있다면 흔들리며 가는 인생도 아름다울 수 있겠구나. 이렇게 나만의 해석으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던 건 아닐는지. 괴테 역시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능동적 사유와 연구, 그리고 창작으로 극복하며 자신의 삶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나간 인물이 아니던가. 어쩌면 자신의 아픈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을 저 한 문장에 담아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잡보장경(雜寶藏經)”엔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 수많은 좌절을 겪으며 눈물 흘려야 했던 그 자체가 이미 큰 발전이고 성장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늘 문득 내 책장에 꽂혀있는 그 노란색 표지의 《시인의 집》을 다시 꺼내 읽고 싶어졌다. 선생님께서 시인이 걸었던 곳을 함께 걸으며 조심스레 그 위에 당신의 발자국을 얹어보셨듯이 나도 여기에 선생님의 흔적을 살짝 남겨두고 싶어졌다. 고르고 보니 하필 카프카가 언급된 부분이다.ㅎㅎ 선생님은 《시인의 집》에 예외적으로 카프카를 넣어야만 했던 이유가 문학을 카프카를 통해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또다시 둘러보는 나의 어수선한 삶. 거기 누운, 마흔한 살 생일을 바로 앞두고 죽은 카프카보다 나는 이미 더 살았다. 그렇건만, 언제나 번잡하게 겉돌기만 했을 뿐 무언가 정말 중요한 것은 아직도 시작도 못한 듯 어수선한 나의 삶을 통렬하게 되돌아본다. 남은 것이라도, 이제라도, 쏟아부어야 할 것 같다. 무엇인가에.(『시인의 집』 155~156쪽)』

이 구절을 다시 읽다보니 나도 왠지 나의 삶을 다시 한 번 통렬하게 되돌아보고 이제라도 무언가에 쏟아부어야 할 것만 같다. 꼭 그리 해야 할 것 같다. 문득 오랜 시간 뵙지 못한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이 순간, 나는 다시 여백서원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이제 <시인의 집>에 수록된 그 많은 멋진 시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하나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쳐야 할 것 같다. 독일 시인 라이너 쿤체의 <한 잔 재스민차에의 초대> , 시의 제목부터 취향저격이다.

들어오셔요, 벗어놓으셔요 당신의
슬픔을. 여기서는
침묵하셔도 좋습니다.
             -라이너 쿤체 「한잔 재스민차에의 초대」, 
『시인의 집』 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