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시에라리온의 별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이라는 이름을 한비야의 책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분명 읽을 당시에도 그 작은 나라의 슬픈 운명에 한숨 지며 마음 아파했으리라. 한국의 3분의 2 정도 되는 땅덩이에서 인구 5백만 명이 살고 있는 이 자그마한 나라가 제대로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건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통해서다.  

한창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영화를 찾아보던 때였다. 어쩔 수 없이 흑인들이 주인공인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그런 영화를 보면 가슴이 너무 아파서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종차별의 역사와 현재를 제대로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리스트를 만들어 열심히 공부하듯 일부러 흑인 인권 영화를 보던 때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내 눈에 들어온 영화가 아프리카 배경의 “블러드 다이아몬드”다. 일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인 영화니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받은 셈이렷다.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영화 초반부터 아프리카 난민들이 무참하게 손목이 잘리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왔다. 원래 잔인한 것을 잘 못 보는 나는 처음부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영화보기가 시작되었다.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하던 솔로몬(디몬 하운수)은 희귀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숨긴다. 무기를 밀거래하는 용병 대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아프리카를 벗어나고 싶다. 우연히 솔로몬에게 다이아몬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한 건 해서 그곳을 떠날 셈으로 그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솔로몬에게는 반드시 구해내야 할 소년병으로 끌려간 아들이 있다. 매디(제니퍼 코넬리)는 시에라리온에서 폭리를 취하는 다이아몬드 산업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기자다. 정보가 필요한 그녀는 대니, 솔로몬과 공조해서 함께 반군의 영토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각자 목표는 달랐지만 따로 또 같이 세 사람의 목숨을 건 모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흑인이 학대받는 영화야 수없이 봐 왔음에도 영화 시작하면서 내 안에 깃든 분노는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저렇게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니 평균수명이 25~35세로 가장 짧은 나라고 인구 대비 신체장애인 수가 가장 많은 나라인 게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거기다 인구의 절반이 난민이 아니던가. 그리고 행인지 불행인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가 발견된 나라란다. 그 다이아몬드를 ‘시에라리온의 별’이라 한다나. 그렇게 큰 다이아몬드가 땅 속에 묻혀있다면 그 나라 국민들의 부와 행복은 따 놓은 당상이어야 할 테지만 이 나라에겐 불행이었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한 내전이 끊이질 않으니 다이아몬드가 곧 신의 저주가 아니고 무엇이랴. 

광산을 소유한 정부와 반군 세력은 다이아몬드의 생산과 밀반출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지만 정작 시에라리온 국민들에겐 고된 노동과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무고한 사람들의 손목과 다리를 자르는 건 일도 아니요 온갖 천인공노할 방법으로 무차별 살상이 버젓이 자행되는 나라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이라고 이름 붙여진 나라, 슬픈 그 이름 바로 시에라리온이다. 그야말로 무법천지다. 

가장 가슴 아팠던 건 어린아이들이 살인 병기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마약을 먹이고 그들 손에 총기를 들려 사람 죽이는 훈련을 시킨다. 솔로몬의 아들도 점차 마약과 광기에 취해 피도 눈물도 없는 소년병으로 길들여진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권력의 달콤함을 알아버린 아이는 이제 멈출 수가 없다. 어린아이들조차 킬러로 변신해 총기를 난사하는, 그렇게 생사의 공포를 넘나드는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난민들을 보고 있자니 이렇게 나만 편안하게 살아도 되는 건지 진심으로 죄스러울 지경이었다.

이윤창출의 보고인 다이아몬드 광산을 둘러싸고 발생한 내전에 다이아몬드를 밀거래하는 이웃나라 라이베리아의 이해관계까지 얽혀 시에라리온 정부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결한 보석이라는 다이아몬드는 시에라리온에게는 결코 신의 축복이 아니었다. 다이아몬드를 차지한 그들이 밝힌 자본주의의 화려한 불빛은 그렇게 시에라리온의 수많은 생명의 피로 물든 다이아몬드와 맞바꾼 것이었다. 

하루 두 컵의 쌀과 50센트의 돈을 받고 시에라리온 사람들은 휴일도 없이 다이아몬드 원석을 캔다. 그것은 라이베리아산으로 둔갑하여 런던으로 건너간다. 다시 인도 공장으로 보내져 정교하게 다듬어진 다이아몬드는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가에 거래된다. 

그 ‘피 묻은 다이아몬드’는 최고의 상품으로 세공되어 그 품격에 맞게 세계 최고급 보석상 진열대 위에서 또 다른 자본가의 손길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못한 등급을 받은 아랫것들 역시 귀하신 몸이 되어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이 작은 보석이 상징하는 영원한 사랑과 헌신은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회사인 드비어스 그룹이 100년 전에 만든 광고 전략의 산물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수많은 연인들 사이에서 사랑의 징표로 결혼 예물로 다이아몬드는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나도 모르게 내 손가락에 눈길이 머물렀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영화 자체에 대해 말해보자면 솔로몬으로 분한 디몬 하운수는 아주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의 아들을 향한 부정(父情)은 눈물겨웠다.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명불허전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가 이렇게 메시지 강한 영화에 출연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민낯을 고발하는 것일 수도 있는 이 영화가 자본주의의 메카인 미국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이러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만들어졌어야만 했던 영화였다. 그리고 그것을 영향력 있는 디카프리오가 해줘서 다행이었다. 

지난 2002년 UN 등의 개입으로 4백만 명의 난민과 7만 5천 명의 무고한 죽음, 그리고 팔다리가 잘린 2만 명의 불구자를 남기고 인간의 탐욕이 빚은 비극 시에라리온 내전은 일단 종료되었다. 시에라리온의 고발로 아프리카의 전쟁에 불을 붙인 것이 결국은 돈이라는 욕망을 좇는 기회주의자들의 상업적 음모와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밀수 공범자들의 합작품임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이 미디어의 힘이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광고 카피를 떠올리니 그레그 켐벨의 표현처럼 정말로 현실의 악취가 나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평소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배후에는 타자에 대한 자기도 모르는 착취가 스며있다는 사실에 순간 오싹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몸담고 있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런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자본주의의 환상을 직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 일환으로 이 영화를 보고 잠깐이라도 그러한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 그 짧은 순간의 자각이 바로 귀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2 thoughts on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1.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중 젊은 남녀의 프러포즈의 순간이 잊지못할순간, 그리고 까만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별빛의 빛을 가진 다이아몬드 반지 또한 그 아름다움에 큰 한 몫을 하는데.. 그 반짝거림이 이름없이 희생되는 우리 아이들의눈물 인지..

    인간은 왜 이럴까요?

    너무 좋은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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