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풀 라이프>

내가 누군가의 행복이었다는 걸~”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으로 달려가는 존재라고 했다. 이 세계에 죽음을 경험한 자는 있을 수 없기에 죽음에 이르는 길만 존재할 터이다. 하지만 사후세계라면 실존적 상황에서 자신의 죽음을 직면하는 그런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리 잠쟈가 하루아침에 죽음의 선언과도 같이 벌레가 된 자신을 바라보는 대타적 시선을 가족들로부터 직접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서는 경험할 수 없는 자신의 죽음을 인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림보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7일 간 머무는 중간역이란다. 그들은 거기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그 행복했던 추억은 림보의 직원들에 의해 영화로 재현된다. 그 영화를 보다가 그때의 기억이 선명해지는 순간 그는 천국의 영원한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바로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 얘기다. 이 영화의 모티브는 인생에서 영원히 머물고 싶은 순간을 선택하면 그 기억만을 가지고 갈 수 있게 한다는 아이디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다. 화면의 느낌은 거의 모노톤에 가깝다. 죽은 후에 림보에 온 자들의 인터뷰 장면이 이어진다. 한 편의 다큐를 보는 듯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전문배우가 아닌 일반인들이 직접 그 인터뷰에 참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것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인터뷰이가 된 듯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으니까. 

림보 직원들은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하지 못해 천국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남겨진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나머지 기억들이 다 잊히는 게 두렵다. 세 살 된 딸을 두고 온 남자는 딸이 스무 살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고 그때까지는 림보에 남아있을 거란다. 딸과 찍은 마지막 사진을 들여다보는 아빠의 얼굴에 코끝이 시큰해온다. 사실상 이 영화의 주인공인 또 다른 림보 직원 모치즈키(이우라 아라타)의 이야기는 내 가슴에 콕 박혔다. 

태평양 전쟁 때 참전했다가 22살에 죽은 그는 행복했던 추억을 찾지 못해 50년이 넘도록 그 청년의 모습 그대로 림보에 머물러 있다. 와타나베(나이토 타케토시)라는 노인의 ‘소중한 기억’ 찾기를 돕는 과정에서 그의 부인이 자신의 약혼녀였음을 알게 된다. 그녀가 5년 전 죽었을 때 선택한 추억이 바로 자신과 함께 했던 순간이었음을 알고 나서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난 그때 행복한 추억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어. 그리고 50년이 지나서 내가 누군가의 행복이었다는 걸 알았어. 정말 멋진 일이야.” 

그리고 드디어 모치즈키는 결심을 한다. 하나의 기억을 선택하고 천국으로 떠나리라고. 그에게 선택된 것은 사후의 기억이었다. 림보에서 만나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가장 행복한 때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순간순간 울컥했던 건 그 죽은 자들의 모습이 너무도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담담하게 자신들이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하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수줍게 고개 숙이던 사람들. 그리고 어린 시절 전차 맨 앞 칸에 타고 가면서 아주 짧은 시간 불어오던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던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노라 말하는 중년 남자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영화는 관객에게 계속 질문하는 것만 같았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은 무엇입니까”, “당신 인생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단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순간을 고르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이 나는 부지런히 또 스스로에게 물었다. 죽고 난 뒤 내게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주어진다면 어떨까?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과연 어떤 추억을 간직하며 떠날까? 정말 많은 생각들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기억의 허와 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의 감정을 다큐멘터리로 찍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후세계 이야기에 약간의 판타지가 덧입혀지고 거기에 다큐 형식으로 비틀어 양방향의 소통이 가능한 아주 독특한 느낌의 영화가 탄생된 것 같다.내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영화였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고자 열심히 기억을 되돌리는 과정에서 나는 잊었던 과거의 추억들과 마주해야만 했다. 나도 주인공 모치즈키처럼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와 주기를 바라면서 내 과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모처럼 편안하게 말이다.

우리는 죽음을 일상적 삶으로부터 은폐하려 하지 말고 직시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게 된단다. 죽음을 보지 못하고 일상적 삶에 빠져 있으면서 자기를 대면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라 했다. 자아의 본래성을 찾을 수 있는 계기는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과연 죽음을 담백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영화 속 단 하나의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해맑은 얼굴에서 나는 배웠다. 나의 고유성에 걸맞게 죽을 수 있도록 그 죽음을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죽음을 생각하는 선구적 결단을 통해 자기 삶의 의미를 새롭게 구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신의 마지막을 인식하는 자만이 살아가는 동안 진정으로 겸허해질 수 있다. 이 생은 백 번 겸손해도 부족하다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