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차_아비규환阿鼻叫喚

며칠 전 서재에 꽂혀있던 단테의 <신곡> 천국 편을 다시 펼칠 일이 있었다. 베아트리체와 단테의 해후 장면을 다시 확인하려고 말이다. <신곡>은 이탈리아의 시인 알리기에리 단테가 기록한 지옥, 연옥, 천국에 관한 상상 기행문이다. 그 어마어마한 상상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던 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단테의 문학을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백퍼 공감한다. 모든 문학의 절정이라 할 수 있을 테니. 

근데, 왜 갑자기 단테의 신곡이냐고? 음… 오늘의 사자성어로 대답을 대신해야 할까보다.  바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다. 나에겐 이 표현이 지옥과 거의 동의어처럼 느껴진달까. 심한 참상을 형용하는 이 말은 전쟁이나 큰 사고로 많은 사람이 참혹하게 죽고 다쳐서 울부짖는 것과 같은 양상을 묘사할 때 쓰는 성어다. 

언덕 아(阿), 코 비(鼻), 울부짖을 규(叫), 부를 환(喚)

아비규환(阿鼻叫喚)은 우리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자주 회자되는 사자성어일 듯싶다. ‘아비(阿鼻)’는 한자만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추측이 안돼서 찾아보니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역이란다. ‘아(阿)’는 무(無)를, ‘비(鼻)’는 구(救)를 가리키는데, 결국 이 말은 ‘전혀 구제받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규환(叫喚)’은 한자로는 ‘소리지르다, 울부짖다’ 정도 될 듯한데, 이 역시 산스크리트어 ‘raurava’에서 유래했단다. 8대 지옥 중 4번째 지옥을 가리킨단다. 아하, 이렇게 탄생한 성어였구나. 그러고 보니 아비규환이라는 사자성어는 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의 합체였네?

불교에서는 8대 지옥이라는 게 있다. 그 중에 아비지옥과 규환지옥도 있나보다. 아비(阿鼻)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구제 방법 없음’이니 고통의 ‘간격이 없다’는 뜻으로 더 유명하더라. 그래서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했다지. 이쯤에서 떠오르는 영화가 있을 게다. 죽지 않고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공간으로서의 무간지옥으로 이르는 길인 ‘무간도(無間道)’, 바로 영화 ‘무간도’다. 양조위 유덕화 주연의 무간도, 다시 한 번 봐야쥐. 

규환지옥은 ‘누갈’이라는 음역이 있다는데, ‘고통에 울부짖는다’는 뜻으로 ‘규환’으로 의역했다지. 이곳에는 전생에 살생, 질투, 음탕, 절도 등을 일삼은 자들이 떨어지는 곳이란다.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빠지거나 불이 훨훨 타오르는 쇠로 된 방에 들어가 뜨거운 열기의 고통을 받게 된다고. 아,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이러니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이라고 했겠지. 만약 지옥이 정말 존재한다면 꼭 그런 모습일 것 같은 거다.

지옥을 여행하던 단테는 그 불쌍한 영혼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지 않나. 단테는 그렇게 모든 사연에 다 귀기울여주고 자신의 첫사랑 베아트리체 눈 속의 눈부처가 되어 천국으로 들어간다. 단테의 천국행은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말이다. 

‘눈부처’란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눈에 내 모습이 비치는 거다. 이것은 누군가와 대화할 때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봐야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상대가 눈을 피하면 눈부처를 볼 수 없다. 그래서 사람 간의 신뢰를 나타내는 하나의 징표로 사용하지 싶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눈에서 눈부처를 보았다. 단테는 그렇게 첫사랑의 눈 속에 담겨 천국으로 들어갔나니. 

고통으로 울부짖는 참상을 묘사하는 아비규환을 얘기하다 눈부처까지 나올 줄이야. 그러고 보니 단테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거구나. 새삼 단테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정적에 의해 몰락하고 심지어 추방당해 유랑생활을 하던 와중에 저 <신곡>을 냈다잖은가. 위대한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아무튼, 오늘은 사자성어 ‘아비규환(阿鼻叫喚)’ 자체는 너무 고통스러운 표현이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그 아름다운 ‘눈부처’로 끝내노니, 내 맘대로 면죄부 받은 걸로~^^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