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차_낭중지추囊中之錐 

낭중지추(囊中之錐), ‘뛰어난 인재는 누구나 알아볼 수밖에 없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주머니 낭(囊), 가운데 중(中), 어조사 지(之), 송곳 추(錐)

‘낭중(囊中)’은 ‘주머니 속’이요, ‘지(之)’는 지금껏 계속 보아왔듯 ‘가다’가 아닌 어조사로서 ‘~의’로 해석되며 추(錐)는 ‘송곳’이다. 말 그대로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이다. 가만히 있어도 기어이 주머니를 뚫고 비어져 나오는 뾰족한 송곳처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남의 눈에 띔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성어는 그 유명한 중국 고대 역사가인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卿列傳)〉에서 조(趙)나라의 공자(公子)인 평원군(平原君)과 관련된 고사에서 유래했다. 노파심에 조금 더 설명해보자면, 평원군(平原君)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살았던 조나라의 공자로서 맹상군 ·춘신군 ·신릉군 등과 함께 ‘사군(四君)’의 한 사람이다. 3번이나 재상이 될 정도로 현명하고 거기에 붙임성까지 있어 식객 3,000명을 거둬먹였다고 전해진다. 

어느 날, 진(秦)나라가 조(趙)나라에 쳐들어오자, 조나라는 평원군을 초(楚)나라에 보내 도움을 청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에 평원군이 식객 중 인재 20명을 선발하는데, 마지막 한 명을 채우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모수(毛遂)’라는 자가 자신을 추천하며 앞으로 나오는 것이렷다(여기서 유래한 성어가 바로 ‘자기가 스스로를 추천한다’는 뜻의 ‘모수자천(毛遂自薦)’이다). 

평원군은 처음 보는 듯한 이 낯선 식객을 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무릇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을 땐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다(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이 말인즉슨 ‘3년이나 내 식객이었거늘 넌 내 눈에 단 한 번도 띈 적이 없노라. 헌데, 너를 뽑아달라고? 싫어!’다. 그렇게 거절을 당한 모수는 포기했느냐? 아니다. 모수의 변(辯)은 이랬다. 평원군 당신이 날 단 한 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주지 않아서다. 오늘 내가 이렇게 넣어달라고 부탁할 때까지 말이다. 좀 더 일찍 넣어줬다면 송곳 끝이 뭐냐 자루까지 밖으로 비어져 나왔을 거다.

이런 자를 어찌 내치랴. 그렇게 모수는 평원군의 수행원으로 뽑혀 초나라의 도움을 얻어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단다. 예나 지금이나 당당한 자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나니. 멋지다. 모수! 

평원군의 저 말에서 유래한 ‘낭중지추’는 그러니까 ‘뛰어난 인재는 어떻게든 두각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말인 거다. 참 좋은 말이다. 헌데 이 성어를 익힘에 있어 꼭 함께 기억했으면 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덕승재(德勝才)’다. ‘덕이 재주를 앞서야 한다’는 뜻이다.

옛말에 ‘덕승재 위지군자(德勝才 謂之君子)요 재승덕 위지소인(才勝德 謂之小人)’이라 했다. 즉 ‘덕(德)이 재주(才)보다 승(勝)하면 군자요, 재주가 덕보다 승하면 소인’이라는 뜻이다. 모름지기 덕이 재주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가르침인 것이다. 아무리 실력을 갖추었다한들 어진 성품이 밑바탕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재능은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없음이라. 

독일의 철학자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이라는 표현으로 ‘똑똑함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잘 찾아내는 이성을 가리켜 도구적 이성이라 한다. 이 편리하고 유용한 이성이 잘못된 목적에 사용될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상상해보라. 여기서 우리는 철학자 이충녕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언제라도 우리의 도구적 이성을 우리 자신을 효율적으로 파괴해버리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목적에 대한 고민이 없는 똑똑함은 가장 무서운 것이 된다’는 것을.

‘낭중지추(囊中之錐)’같은 똑똑한 인재를 발견하는 일은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똑똑함이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덕승재(德勝才)’의 교훈을 기억해야 하리라. 능력주의가 팽배한 작금의 시대적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