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의 미를 거두자’라는 말, 우리 정말 많이 하며 산다. 이 말의 의미를 진지하게 곱씹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그냥 습관적으로 썼을 뿐. 오늘은 12월 30일, 내일 하루가 더 남아있긴 해도 대체로 한해의 끝맺음에 대한 부담 아닌 부담으로 분주할 수도 있을 시간이다.
‘유종지미(有終之美)’는 사전적 의미로는 ‘시작한 일의 끝맺음을 잘하여 좋은 결과를 거둠’이다. 이 정의에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끝맺음을 잘하는 것’이란 말이 덧붙는다. 그렇다. 우리는 보통 이 사자성어를 ‘좋은’ 결과를 맺을 때 써왔던 것 같다. 그렇다면 한자를 보자.
있을 유(有), 끝낼 종(終), 어조사 지(之), 아름다울 미(美)
‘유종(有終)’은 ‘끝이 있음’이다. ‘지(之)’야 뭐 ‘~의’겠고, ‘미(美)’는 ‘미덕?’ 쯤으로 보면 되려나? 사실 이 성어의 문자적 해석만 보면, ‘좋은 끝맺음’이라기보다는 그저 ‘끝맺음’이 있는 그 자체가 좋음을 의미하는 거다. ‘좋은’이라는 형용사가 무엇을 수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이라.
이 성어의 출처를 찾아봤다. 중국 사이트에서 바이두(검색) 해봤지만, 정보는 많지 않았다. 아주 짧은 문구에서 ‘주역’이라는 단어를 발견했을 뿐. 그리하야 바로 <도올주역강해>를 펼쳤다. ‘유종(有終)’이란 단어를 찾아 얼마를 헤맸던고. 이런 말이 나오더라.
“謙,亨,君子有終(겸, 형, 군자유종)。”
‘겸(謙)’은 육십사괘(六十四卦)의 하나란다. 뭐라고? ‘괘’? 생경하다. 그렇다. 지금 난 <주역>에서 나온 말을 하고 있는 거다. 양해하소서~ 하하. 이 문장 아래 도올샘이 해놓은 해석을 봐도 무슨 ‘괘’ 이야기도 나오고 말이 좀 많다. 그것을 짧게 정리하니 이렇더라.
‘겸의 덕성을 지닌 자는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다. 군자는 오만에 빠지지 않고 겸손하며, 이러한 겸손의 덕성은 끝까지 변치 않는다.’
저기 ‘君子有終(군자유종)’이란 말은 그러니까 군자는 시종일관 겸손의 미덕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렷다. 도올샘은 이 ‘겸(謙)’괘에는 부정적 의미의 글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덕성의 괘라고 했다. 그만큼 인생에 있어서 겸양은 중요한 것이라고.
아, ‘유종(有終)’이 이렇게 나온 거네. 나 역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유종지미’가 유래된 맥락을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출전을 확인하면서 나의 시선은 ‘시종일관’이라는 표현에 머물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좋은 끝맺음’에 방점을 찍지 않고 ‘끝까지 변치 않는다’는 의미에서 ‘지속성’을 끌어내고 싶어졌다. 특히나 우리 삶에 있어 너무도 중요한 ‘겸손’이라는 미덕으로부터 유래한 말이 아니던가.
이 ‘유종지미(有終之美)’를 그저‘ 좋은 결과’, 혹은 ‘잘 끝내서’의 의미 말고 이제는 ‘꾸준하게 지속하는’ 것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써보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중국의 작가 스티에셩이 <죽음에 관하여>라는 산문에서 했던 말과도 맥이 통한다는 생각이 드네. 그가 뭐라 했냐고?
그가 그랬다.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거나 네 자신에게 뭔가 위로가 필요할 때, 절망을 완전히 떨쳐내고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데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단다. 그냥 바보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던가,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던가.
그렇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을 좋은 결과에만 맞추다보면 삶이 너무 고단해질 테니, 그냥 과정을 사는 그 자체로 만족할 수는 없겠느냐는 말일 테다. 내게 참 큰 위로를 줬던 스티에셩의 글이 오늘 이 ‘유종지미’에서 되살아났다.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한해의 끝맺음이 아니라 새해로 이어지는 그 숱한 날들 중 하루인 오늘도 내가 하던 일 여일하게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었네. 그래, 그러면 되겠다. 자꾸 허무해지려는 마음 부여잡고 늘 해왔던 것처럼 오늘을 또 살아내면 되겠다.
과거 이맘때 쯤 썼던 글을 보다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1596년 1월 1일과 1월 2일 이틀간의 일기 끝에 나온다는 ‘덕윤신(德潤身)’에 시선 고정. ‘덕은 몸을 빛나게 한다’는 이 말은 중국의 고전 <대학>에 나오는 문장의 일부란다. 난중일기를 번역한 박종평 연구가는 이것이 이순신 장군의 새해를 맞아 ‘덕’을 닦겠다는 새해 결심이라 해석했다.
대학 새내기 때 박사반 선배님들 사이에 꼽사리 꼈던 ‘<대학>강독’ 스터디에서 외웠던 문장을 만나니 참 반가웠던가 보다. 원문은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여 마음은 넓어지고 몸에는 살이 오르니(편안해지니),… ) 뭐 이쯤 될 것이다.
그래… 그때 나의 결심처럼 다른 욕심은 부리지 말아야지 또 한 번 다짐한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마음 한 켠에 두었던 ‘사람에 대한 서운함, 원망’ 같은 부정적 감정들 버리고 나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할 ‘덕을 닦아봄’에 집중해보자고. 마음이 너그러워져 내가 조금 편안해지는 긍정적 삶을 지속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나. 꼭 그리 해야겠다.
지금 밖에는 흰 눈이 펑펑~ 너무 이쁜 세상이다. 그리고 참 좋은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