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보통의 나날들

오늘은 가차 없이 어제로 떠밀려가고 내일은 한결같이 오늘을 기다린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길들여져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지루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 역시도 비를 기다리는 날들이 늘어간다. 나의 기분도 자연스레 외로움에 지친 우울모드다. 

나는 오늘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소개했던 여행의 방법을 실천해 보았다. 그는 책에서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라는 작가가 자신의 방에 대한 경이를 기록했던 《나의 침실 여행 》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드 메스트르는 분홍색과 파란색이 섞인 파자마를 입고 자신의 방안에서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해보라고 제안한다. 그의 말을 따라 내가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나와 가장 가까운 사물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우선 나의 최애 공간인 내 방 서재를 둘러본다. 과연 평소보다 좀 더 꼼꼼히 내 방을 둘러보니 예전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서가의 한쪽 귀퉁이에서 그동안 내 관심을 받지 못해 소외되었던 책들이 오래간만에 주인의 손길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또 내게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나만의 독서에 대한 추억이 뜬금없이 소환되기도 했다. 

밖에서 쉼 없이 분주하다가 집에 있게 될라치면 어김없이 서가 앞에서 서성이던 나, 무심코 집어든 책을 몇 장 펼치다 이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독서 삼매경으로 빠지곤 했던 나의 모습이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랐다. 그뿐인가? 서재 창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밖을 빼꼼 내다보다 높은 빌딩 숲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겨울 한낮의 예쁜 골목길을 발견했다. ‘내 서재에서 내려다보는 창밖 풍경이 이렇게 눈부셨구나.’ 진한 커피 향이 묻어날 것만 같은 다크 브라운의 원목 테이블 나뭇결을 따라 손바닥으로 쓸어본다. ‘와우, 이렇게 기다란 테이블이었다고? 컴퓨터 책상을 겸하기에 딱 알맞은 크기로 자리 잡았네.’ 새삼 나와 늘 함께 해주었던 모든 것들이 참 각별하게 다가왔다. 그 자리를 지켜준 것들에 감사했고 그 순간 나는 뭔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100%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여행의 심리를 내가 있는 곳에 적용할 수 있다면 거기가 바로 세계 최고라 불릴만한 여행지만큼이나 흥미로운 곳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꼭 내 방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로, 주변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나가다 보면 평소에 너무 당연하게만 다가왔던 일상들이 새롭게 내 호기심을 자극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금까지 나는 습관적으로 내 우주가 참 따분하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던가. 실제로 우주는 우리들의 기대에 적당히 맞추어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내 진부한 삶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어떤 형태로든 흥밋거리가 잠재해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내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치들이 내 가까이에 층층이 숨어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사고의 전환이 시작되는 순간, 내가 속한 우주는 전혀 새로운 세계로 재탄생할 수 있다. 

수용성이라는 관점에서 여행하는 심리를 이해하고 겸허한 태도로 주변을 바라보면 우리는 익숙하지만 낯선 또 다른 풍경과 만나게 된다. 결코 요란하지는 않지만 우리 곁을 늘 맴돌고 있던 그 사소함 속에 우연히 끼어든 불청객처럼 예기치 못한 놀라움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내 삶의 주변에 오래도록 머무르면서 더 이상 우연이 아닌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수학자이면서도 신비주의적인 철학적 색채를 강하게 띠었던 독일의 철학자 파스칼은 어쩌면 이러한 여행의 기술을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오래전 《팡세》에서 이미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