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일차_전전반측輾轉反側

한 해를 이제 곧 떠나보내야 하는 요즘, 추운 겨울밤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진다. 이런 날이면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며 돌아눕기를 수십 번은 하는 것 같다. 새벽까지 그러고 있는 나를 보면 떠오르는 사자성어가 있었다. 이런 경우 탄식과 함께 입에서 흘러나오기 딱 좋은 그런 말, 전전반측(輾轉反側)이다. 걱정거리로 마음이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함을 이르는 바로 그 표현 말이다. 

우리 일상에서 이토록 자주 접하는 익숙한 이 성어를 한자까지 들여다본 적은 또 많지 않으리라. 오늘 그걸 한 번 해보자는 거다. 요런 글자들로 이루어진 전전반측(輾轉反側)을 해체해보자. 

돌아누울 전(輾), 구를 전(轉), 뒤척일 반(反), 기울 측(側)

‘전전(輾轉)’은 수레바퀴가 한없이 돌며 옆으로 굴러간다‘는 뜻이다. 한자를 자세히 보면 두 글자 모두 왼쪽에 수레 ‘거’ 혹은 수레 ‘차’라고 하는 이 글자(‘車’)가 있다. 보이는가? 그래서 이 뜻풀이에서 수레바퀴 얘기가 나온 거다. 그럼 ‘반측(反側)’은 뭐냐? ‘옆으로 뒤척이다’의 뜻이다. 그러니까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몸을 반쯤 돌아 모로 세웠다가 뒹굴다가 다시 옆으로 뒤집으며 뒤척인다’는 의미가 되시겠다. 우리가 잠이 안 올 때 하는 행동이 그대로 그려지지 않는가. 바로 그걸 상상하면 되겠다. 근심과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 말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인 <시경(詩經)>에 나오는 ‘관저(關雎)’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춘추시대의 민요를 중심으로 하여 모은 이 시집 제1편 제목인 ‘국풍(國風)’의 첫 번 째 시다.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사랑시로 일컬어지는 ‘관저(關雎)’는 내가 대학교 입학하고 처음 제대로 감상한 중국시였다. <중국문학의 이해>라는 수업에서 ‘아사고인(我思古人)’에 대해 얘기해주시던 노교수님으로부터 원문으로 배운 첫 번째 시가 바로 ‘관저(關雎)’였다. 

공자(孔子)가 엮은 <시경(詩經)>의 ‘국풍(國風)’편에 나오는 ‘관저(關雎)’라는 이 시는 성인(聖人)으로 추대되는 주(周)나라의 문왕(文王)과 그의 아내 태사(太姒)를 칭송(稱頌)한 것이라 전해진다. 시의 내용은 강기슭에서 울고 있는 ‘저구(雎鳩)’라는 물새를 아름다운 숙녀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라. 

‘관저(關雎)’에서 전전반측(輾轉反側)은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워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었다. 그 시의 일부를 여기서 다시 감상해보고 싶어졌다. 모두 3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3장 마지막 구절에 전전반측(輾轉反側)이 나온다. 

구룩구룩 물수리는 강가 섬에 있네[關關雎鳩 在河之洲].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窈窕淑女 君子好逑].
들쭉날쭉 마름풀 이리저리 헤치며[參差荇菜 左右流之],
자나 깨나 요조숙녀를 찾아다니노라[窈窕淑女 寤寐求之].
구하나 얻지 못하니 자나 깨나 그 생각뿐이라[求之不得 寤寐思服].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이리저리 뒤척이노니[悠哉悠哉 輾轉反側].


이 시에서처럼 전전반측(輾轉反側)은 처음에는 ‘님을 사모(思慕)하여 잠을 이루지 못함’을 이르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정의 의미는 많이 퇴화되고 단지 걱정과 많은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는 경우를 두고 전전반측이라 하더라. 

내게 참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시에서 요조숙녀(窈窕淑女)와 군자(君子)가 나오는데, 여기서 군자((君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성인으로서의 군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남녀 간의 사랑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는 이 시에서 군자는 요조숙녀가 꿈에도 그리던 좋은 배필로서의 남자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시경((詩經)>에 대해 이렇게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중국의 여러 고전에서 나오는 표현들을 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을 배운 계기였다고나 할까. 이것이 바로 이 ‘관저(關雎)’라는 시가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일 게다. 

이 전전반측과 같은 의미의 사자성어로 ‘오매불망(寤寐不忘)‘이 있다. 이 성어의 ’오매(寤寐)’는 이 ‘관저(關雎)’ 시에도 두 번이나 등장한다. 바로 ‘자나 깨나’의 의미로 말이다. 이와  같이 오매불망도 바로 이 시에서 유래하여 뒤에 나오는 ‘전전반측(輾轉反側)’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여 잠 못 들고 뒤척이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마찬가지로 근심이나 생각이 많아 잠 못 드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이게 된 거였더라. 그러니 이 오매불망(寤寐不忘)도 머릿속에 입력!!

그나저나 난 왜 밤마다 전전반측 잠을 못 이루는가? 태생적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할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라 치부하기엔 조금 과함이 있다. 인간이 자유를 갈망하면 할수록 타자의 시선에 갇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불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선은 결코 타자가 만드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만든다는 것. 내 속에 지옥이 있다는 거다. 

누굴 탓하랴. 내가 범인인 것을. 내 안에 깃든 불안을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나’라는 존재가 편안해질 방법은 거의 없다. 그저 이렇게 부족하고 가엾은 나를 조금 더 토닥이며 사랑하는 수밖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