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차_유유자적悠悠自適

산이나 바다 등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면 복작거리는 도심 속에 있을 때와는 달리, 천박하고 원초적인 욕망과 모든 소소한 노여움으로부터 벗어나 나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연 속에는 분명 이처럼 작지만 중요한 순간들이 존재하고 있다. 은은한 물빛으로 빛나고 있는 바닷가를 저 멀리 내려다보며, 또 나무그늘이 우거진 사이로 드러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보낸 매 순간들이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가장 유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의 한 점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만큼 그 찰나의 장면 장면들은 또렷하게 기억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시간과 경쟁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가끔 속도에 무감각하게, 천천히 살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 바로 ‘느림의 미학’이 존재하는 슬로 시티나 자연으로의 여행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외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여행이라는 것이 때로는 어떤 특별한 의미부여 없이 그냥 훌쩍 떠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그동안 무심하게 대해왔던 나와 가장 가까운 사물들에 대한 따뜻한 관찰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선물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미래로 편하게 직행하기를 원하지만 그 길을 우회한다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예기치 않은 우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미지의 전혀 새로운 세계로 인해 의외의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으니까. 의외성이 짙을수록 그 뒤에 따라오는 흥미는 배가될 수 있기에 우리는 암암리에 의외성, 그 어긋난 결과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지금 이 초스피드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어쩌면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지금 드는 생각은 어디서든 ‘유유자적’의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전형성에서 벗어난 의외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평창의 깊은 산속, 아름다운 산장에서 3박 4일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마치 무릉도원 같았던 자연 속에서의 꿈같았던 시간을 마감하는 아쉬움을 담아 오늘의 사자성어는 바로 유유자적(悠悠自適)이다.

유유자적을 이루는 네 개의 한자는 요렇다. 

멀 유(悠), 멀 유(悠), 스스로 자(自), 갈 적(適)

‘속세를 떠나 아무런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사는 삶’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 한자 ‘멀 유(悠)’는 ‘멀다’나 ‘아득하다’ 외에도 ‘근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웬 근심하다? 뭔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이 한자의 구성 원리와 형태를 보면 이해가 될 게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재미없는 한자수업을 시작할까나? ㅎㅎ 

‘悠’자는 攸(바 유)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攸’자의 모양은 사람을 몽둥이질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매를 맞는 사람은 노예. ㅠㅠ 여기에 마음 심(心)자가 더해진 ‘悠’자는 평생을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글자라 할 수 있겠다. 노예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니 ‘悠’자가 ‘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는 의미가 생긴 건 이제 납득이 될 게다. 이처럼 근심스럽게 ‘생각하다’라는 의미에서 ‘멀다’, ‘한가하다’ 등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그리하야 ‘유유(悠悠)’는 ‘깊이 근심하다’, ‘아득히 먼 것’, ‘한가로이 자유자재인 상태’ 등의 의미가 있다. ‘자적(自適)’은 ‘스스로 가다’라는 뜻에서 확장되어 ‘자기 마음대로 나아가고 물러나며 그 즐거움에 만족하는 모양’을 뜻한다. 이 두 단어가 합쳐진 ‘유유자적’은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편안하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음 편히 지내는 상태나 그러한 태도’를 뜻한다. ‘주로 산수 자연에 머물며 복잡한 세상사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그동안 우리는 모두 참 많이도 바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 미하엘 엔데의 동화소설 [모모]에 나오는 그레이 신사들의 말만 믿고 시간을 시간은행에 차곡차곡 저축하며 바쁘게 살아가던 사람들처럼. ‘미래의 언젠가는 그 은행에 저축해놓은 시간을 되찾아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지’ 하면서 열심히만 살았었다. 그 회색 신사들이 실은 우리의 시간을 훔쳐간 시간도둑들인 줄도 모르고… 

아무래도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던 소녀 모모’가 내 곁에 다녀간 듯하다. 마치 내 귀에 속삭이는 것 같다. 꼭 뭘 해야겠다는 진지한 다짐을 잠시 접어두고 현재의 감정에 집중하라고. 바쁜 일상에서 한 번쯤은 쉼표를 찍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라고.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도시가 만들어내는 그 많은 빌딩들의 점등.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드러나는 화려함의 극치 그 이면에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불안감은 도시인들이 숙명과도 같이 홀로 안고 가야 하는 현대병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극도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이 화려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게 될 절대 고독, 바로 데이비드 리스먼이 말한 ‘군중 속의 고독’이 더 이상 불치병이 되지 않고 힐링될 수 있기를…^^

그 희망의 메시지가 바로 이번 추석 여행이 나에게 준 값진 선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