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양자물리학

엄마로 산다는 것~

우리 둘째는 축구를 했던 아이다. 그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축구를 시작했을 때 나도 축구 공부를 시작했다. 그전까지 세상 이해할 수 없는 게 90분 동안 네모난 초록 사각형 안에 장정 22명이 모여 그 조그만 공 하나만 죽어라 쫓아다니는 축구라는 스포츠였다. 축구의 문외한인 내게 그렇게 지루하고 무의미한 스포츠는 없었다. 그랬던 내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 복잡한 축구 룰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나의 두 아들이 잠 설쳐가며 새벽에 꼭 봐야만 하는 스페인 축구리그인 프리메라리가 축구팀(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과 각 팀별 축구선수들의 이름, 포지션, 등번호까지 다 외우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나도 새벽에 일어나 두 아들과 함께 프리메라리가를 시청하는 열렬한 축구팬이 되었다. 

왜 그랬나고요? 이유는 단순했다. 축구선수인 아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사춘기에 들어섰던 건지 둘째는 원래도 예민한 성격이었는데 더 말이 없어졌더랬다. 큰아이와는 달리 나는 둘째가 조금 더 어려웠다. 말을 걸어도 대답을 잘 안 하는 둘째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싶다가도 그냥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아이가 축구를 하면서 달라졌다. 축구 얘기만 나왔다 하면 내 둘째 아들 맞나 싶게 말이 많아지는 거다. 옳거니 이거다. 축구를 알면 울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겠구나 싶었다.

큰아들한테 매일 물어보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노트필기까지 해가며 정말 열심히 외웠다. 큰아이와 둘째가 응원하는 팀이 달라서 나는 두 팀에 대해 똑같이 공부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한 팀으로 조금이라도 기울어지지 않게 하려고 뉴스 기사를 검색할 때도 반드시 메시와 호날두 둘 다를 같이 검색했다(엄마는 공평해야 했다). 나는 그렇게 대화가 통하는 축구선수 엄마이고 싶었다. 덕분에 나와 둘째와의 거리는 많이 가까워졌다. 축구는 이제 내게 세상 재미난 스포츠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양자물리학의 매력에 푹 빠졌다.

왜 또 그러냐고요? 이 대답 역시 아주 심플하다. 물리학도인 아들과의 대화를 위해서. 큰아들 혀기의 전공이 현대 물리학이고 그중에 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가 양자물리학이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다. 중학교 때 수학과 물리를 엉겁결에 100점 받아본 이후 그 점수를 다시는 받아보지 못했다. 수학선생님은 너무 재미없으신 분이었고 물리선생님은 너무 무서웠다고 핑계대기도 했지만, 사실은 나는 이과 머리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비겁한 합리화일 뿐이다. 나는 수학과 과학과는 결코 친해질 수 없었다. 이 두 분(수학, 물리)은 내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짐 홀트의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함께 걸을 때》를 읽으며,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게 재미있다는 거다. 너무도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 차 있는 《코스모스》에 감탄하고, 제목 그대로 내게 깊은 울림을 선물한 《떨림과 울림》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인간에 대한 성찰이 되기도 했다. 마치 철학서를 읽으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뜬금없이 던져보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좋았던 건 이제 아들과 밥 먹고 난 식탁에서 나누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가 너무 자연스럽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물리학 얘기가 흥미진진할 수가 있는 거지? 이과 열등생인 내가 말이지… 이럴 수도 있구나. 며칠 전에 큰아이와 양자물리학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자연과학 역시 철학과 마찬가지로 교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면 알수록 자연과학은 철학이고 이 둘은 같이 간다는 것(나는 양자물리학에서 니체를 보았다), 그리고 물리학자들만이 하는 다른 세계의 학문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다 물리 작용임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내 몸도 ‘원자’로 되어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리).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주의 언어가 수학이구나. 너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이제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주의 법칙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수학 공식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수학(미분)으로 쓰인 우주의 원리를 해석해주는 사람이 물리학자네. 큰아이의 아이패드가 온통 알 수 없는 수식으로 가득한 것을 보며 ‘외계인이야!’ 했던 것을 떠올리며 난 피식 웃었다. 나는 ‘수학을 정말 못하니까 물리학은 절대 이해할 수 없어’라는 생각을 달리 해보기로 했다.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도 번역서를 통해 중국서적을 이해하듯이 나도 물리학자들이 해석해 놓은 책들을 열심히 읽다 보면 우주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중국어’ 번역사인 나와 ‘우주의 언어-수학’ 해석자인 물리학자들이 하는 일이 비슷하구먼 ㅋㅋ 이런 얼토당토않은 공통점을 찾으려고 애쓰는 나 자신이 대견했다. 이렇게라도 물리학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라니… 

암튼.. 결론은 요즘 나는 물리학과 사랑에 빠졌다는 얘기다. 큰아들 덕분이다. 다음에 만나면 양자물리학에 관한 더 많은 얘기들을 더 흥미롭게 할 수 있으려나? ㅋ 그랬으면 좋겠다.

나에겐 소통하고픈 자식이 하나 더 늘었다. 나의 며느리 미니다. 며칠 전 아들 집에 갔을 때 미니가 책 한 권을 가지고 내 옆에 앉더니 ‘이 책 어머니랑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하더라. 같이 책을 펼쳐서 이런 저런 얘기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미니가 그런다. 나랑 함께 읽을 책이 또 한 권 있다고. 뭐냐고 물으니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란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 바로 《피로사회》를 주문했고 그 다음날 배달된 책을 열심히 읽었다. 두께는 아주 얇은데 굉장히 밀도가 높은 철학에세이였다.

그리고 단번에 《피로사회》에 대한 독후감을 완성했다. 너무 좋았으므로.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나는 또 울며눌님과 《피로사회》를 주제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겠지?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로 산다는 것, 아이들로 인해 엄마가 경험하는 세상은 무한대로 커져간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 해야 할 일들도 그만큼 많아진다는 얘기다. 그 과정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 덤으로 아이들과의 소통이 선물로 주어진다는 게 그 무엇보다도 멋진 일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소소한 행복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한동안 엄마인 게 슬픈 적도 있었는데 지금 이 마음으로 계속 살고 싶은 걸 보니 나는 엄마가 맞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