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초긴장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힘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왜 뜬금없이 어머님 생각이 난 걸까. 왜 그 옛날의 풍경이 떠오른 걸까. 참 신기한 경험이다.
이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하면 식탁 위에 차려져 있던 따뜻한 저녁밥이 그리웠던 걸까. 어머님이 생김치를 담그신 날은 내가 밥 두 그릇 먹는 날이었다. 며느리가 좋아하는 생김치에 콩 많이 들어간 밥을 해놓으시고 스스로 너무 만족해하셨던 우리 어머님. 그 환한 얼굴이 떠오른 밤, 난 이 아쉬운 마음을 성어에 담아 잠시 추억의 글을 꺼내본다.
효자애일(孝子愛日), 부모님과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애석히 여긴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자식이 부모님께 효도하고픈 마음을 담은 성어라 하겠다.
효도 효(孝), 아들 자(子), 아낄 애(愛), 날 일(日)
효자(孝子)는 말 그대로 효자, 애일(愛日), 여기서 애는 사랑 애(愛)가 아니라 ‘아끼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듯하다. 그래서 전체 뜻은 ‘효자는 날(시간)을 아낀다’가 되겠다. 될 수 있는 한 오래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고자 하는 자식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리라. 성어 그 자체로 애틋함이 묻어난다. 특히 오늘은 더더욱~
이 성어는 중국 한(漢)나라의 유학자 양웅(楊雄)의 <법언(法言)·효지(孝至)>에 나오는 말이란다. 이 사람은 역사적 평가도 그렇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고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으련다. 하하. 오늘은 나의 어머님을 그리는 그런 날로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내 마음을 담은 글로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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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하루였다. 아침 9시부터 6시간을 내리 연강하고 난 몸은 이미 파김치다. 늘 그렇듯 한 끼도 먹지 못했다. 오후 3시를 넘긴 식사를 하기에도 어중간한 시간, 허기라도 채우고픈 마음을 어서 집에 가서 침대에 눕고 싶은 욕구가 이겨버렸다. 결국 나는 바삐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하철역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가을의 끝자락, 나는 오늘 겨울을 벌써 만난 것도 같다. 해거름 녘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옷깃을 여미며 계단을 내려오던 나의 눈길이 머문 곳은 알도 촘촘하게 잘 영근 옥수수가 나란한 노점상.
‘제철 아닌데도 아직 옥수수가 있네.’
나는 그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결국 탱글탱글 윤기 나는 옥수수 두 개들이 한 봉지를 샀다. “참 맛나.” 하시며 웃어주시는 할머니, 꼭 내 어머님을 닮았다. 그 푸근한 미소에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많이 파세요.”
나는 옥수수 봉지를 받자마자 볼에 갖다 댔다. 참 따뜻했다. 그렇게 얼굴을 옥수수에 파묻은 채로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문득 내 마음이 그리운 얼굴에게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시나요?’
유례없는 한파로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었던 그날도 어머님은 재래시장에 다녀오시느라 그 추운 날씨가 무색하리만치 온몸이 땀투성이었다. 유난히 땀이 많으신 탓도 있지만 시장에만 가셨다 하면 어김없이 강림하는 그 소박한 지름신 때문이었다. 턱까지 차오른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현관문을 들어서시는 어머님. 이제 분신처럼 되어버린 그 낡을 대로 낡은 빛바랜 녹색 배낭은 미어터질 듯 배불뚝이 되어 어머님의 자그마한 등에 볼품없게 매달려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양손엔 검은 봉지가 서너 개씩 겹쳐 들려진 채로.
신발 벗기가 무섭게 어머님은 고만고만한 봉지에 싸인 것들을 부산하게 헤치시더니 내 앞에 뭔가를 불쑥 들이미신다. 삶은 옥수수였다. 아직 따뜻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머님의 장바구니 아이템이다. 며느리의 옥수수 사랑을 익히 잘 알고 계시는 어머님이다. 내가 집에서 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꼭 갑갑해서 운동 나간다는 핑계를 대시고는 재래시장까지 손수 옥수수를 사러 가시곤 했다.
어머님이 시장에 다녀오신 날이면 우리 집 식탁 위는 금세 상추며 풋고추며 애호박이며… 엄마시장이 새끼 쳐놓은 애기 시장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먹거리들로 그득해지곤 했다. 그리고 뒤따르는 고향냄새 물씬한 저녁 만찬의 호사는 필수였다. 밥 먹을 새도 없이 앉아서 일만 하는 며느리에게 그 좋아하는 옥수수 먹이고 싶어서 일부러 시장을 찾는 그런 시어머니가 어디 또 있으려나.
어머님과 함께 산 지 15년, 고부가 한 지붕 아래 사는데 설마 이렇게 훈내 나는 모습만 있었을까. 싫어질 때가 왜 없었을까. 살면서 고집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어머님의 그 고약한 모습들조차도 이해하고자 많이도 애썼던 참 눈물겨운 세월이었다. 그 노력을 하게 했던 힘은 늘 한결같던 큰며느리에 대한 가슴 먹먹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머리로는 계산이 되는 고부관계에도 순수하게 가슴을 울리는 그런 순간들은 있다. 그런 고마운 시간의 편린들이 모여 삶의 흔적으로 남을 때, 이성으로는 자꾸 원망하고 미워지려는 시어머니조차도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착한 천사가 되기도 하니까.
볼에 옥수수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집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더니 끝내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내 안의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고 목줄을 타고 올라왔다. 코끝이 시큰하며 시야가 뿌해졌다. 그 소녀처럼 수줍게 웃으며 며느리 손에 옥수수를 건네주시던 어머님이 사무치는 순간이었다.
매일매일 그리움 가슴께에 심으며 견뎌온 날들. 그렇게 언제부턴가 어머님은 커다란 존재감으로 내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계셨던 거다. 그게 사랑이든 미움이든 그 둘도 아니라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든… 겨울이 오는 길목에 서서 안부를 묻는다.
“어머님, 잘 지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