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발견했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는 사자성어를 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언젠가부터 이 성어가 내 귀에 몇 번 들어왔어도 그저 ‘어쩌다겠지~’했다. 근데, 오늘 또 듣고는 ‘어라? 꽤나 자주 들리네?’가 되더라. 그리하여 오늘의 성어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인 걸로~
대체 무슨 뜻이관대? 달을 보라고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본다는 뜻이다. 이 말이 함의하는 바는 ‘본질을 외면한 채 지엽적인 것에만 집착한다’는 것일 게다. 어떤가? 이 뜻을 들어보니 언젠가 한 번쯤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그럼 이제 한자풀이를 해봅시다.
볼 견(見), 가리킬 지(指), 잊을 망(忘), 달 월(月)
‘견지(見指)’에서 지(指)는 ‘가리키다’는 뜻으로부터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니 ‘손가락을 보다’로 해석하면 되겠다. ‘망월(忘月)’은 ‘달을 잊어버리다’로 하면 되려나? 전체적인 해석은 ‘손가락을 보며 달을 잊는다’가 되시겠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달을 보여주려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그 손가락만 보고 정작 보라는 달은 안 본다는 의미인 거다. ‘견월망지(見月忘指)’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달을 보고 손가락은 잊어라!’ 정도 되겠지?
이 성어는 능엄경(楞嚴經)에 나온단다. 불교의 이치와 수행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불교경전 말이다. 불교 입문자들에겐 필수교재인 듯. 불교의 모든 가르침이나 경전의 내용들은 우리 마음의 본체를 밝히는 수단이다. 여기서 바로 응용이 되네? 경전의 텍스트 해석에만 집착하지 말고 그 텍스트 이면의 깊은 의미를 탐구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을 때 바로 이 ‘견지망월(見指忘月)’을 쓸 수 있다는 거다. 본래의 의도나 목적을 잊고 다른 곳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고자 할 때 말이다. 아주 유용하쥬?
능엄경에는 이런 말도 나온단다.
어떤 사람이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본다면 그 사람은 달을 못 본 것만이 아니다. 손가락도 못 본 것이다.
여기서 ‘손가락’은 방법이나 길을 의미한다면 ‘달’은 목적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저 말은 본래의 목적을 놓치면 그 수단 자체도 잘못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게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 뭐라뭐라 한다고 생각해보라. 목적이 전도되는 현상이 생기지 않겠는가? 원래 이걸 하려고 했는데 엉뚱하게 다른 길로 가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진리가 하늘에 있는 달이고, 문자가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지만, 손가락이 없다고 달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어떤 덕망 높은 승려가 했다는데, 누군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네. 하지만, 저 문장만으로도 그가 본질은 진리에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는 걸 알 수 있겠더라. 이 승려가 자신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불자에게 ‘글을 알지 못하네’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크게 실망했다지 않나. 승려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이보게나, 내가 문자를 모른다고 진리가 어디 가겠나? 뭘 그리 실망하나?’라고. 아무튼, 그 불자에게 승려가 해준 저 말에서 견지망월(見指忘月)이 유래했단다.
이 성어는 대체로 ‘지엽적인 것으로써 본질을 흐리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 같다. 본래의 의도와 목적에 맞게 행동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 나는 이 성어를 보다 구체적으로 소통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싶다. 난 달을 가리키는데, 상대방은 손가락만 보고 있다면 우리 둘 사이에 진정한 소통은 부재한 것이리라. 난 이 말을 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내 말을 들으면서도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격이랄까? 상상만으로도 갑갑하지 않은가.
사람들 속에서 소통되지 못하는 경험만큼 외로운 게 또 있을까. 문득 ‘삶’이라는 글자를 떠올려본다. 가만히 그 안을 들여다본다. ‘사람’이라는 두 글자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그렇다. 삶이란 바로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인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을 때라야 찾아질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의미라는 게 어딘가에 있다면 말이다.
누구든 내 가장 소중한 어머니처럼, 오래도록 같이 살아온 편안한 이웃처럼 허물없이 얘기하고 푸근하게 웃으며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좋은 인연들과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정말 인연이란 모를 일이다. 언제 어디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게 인생인 것 같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결과인지, 필연을 가장한 우연의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대체로 삶을 고의적 미필로 보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매 순간 우연이라는 옷을 입고 찾아오는 인연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만남으로 기억될 때, 좀 더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새삼 내 주위의 고마운 인연들 하나하나가 떠오르는 하루의 끝, 감사한 마음으로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