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名實相符), 이름과 실제가 서로 부합한다는 뜻이다. 명성이 헛되이 퍼진 게 아니라고, 이름날 만하다고 느낄 때 쓰는 ‘명불허전(名不虛傳)’과 비슷한 말이렷다. 둘 다 우리 일상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사자성어다.
우리는 살면서 알려진 것과 실제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는가. 그럴 때 쓰는 성어가 유명무실(有名無實)이다. 즉 외면의 꾸밈이 내면의 바탕을 이겨버린 번지르한 상태를 이르는 바로 그 말. 이름만 있고 내실이 없을 때 쓰는 말일 테다. 이와 반대되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사자성어가 바로 명실상부(名實相符)인 거다. 자, 그럼 가볍게 한자 풀이를 해보자규.
이름 명(名), 열매 실(實), 서로 상(相), 부합할 부(符)
‘명실(名實)’은 ‘이름과 실질’이요, ‘상부(相符)’는 ‘서로 부합하다’의 의미겠다. 여기서 ‘부(符)’는 ‘부신(符信)’을 뜻하리라. 부신이 뭐냐고? 옛날에 가족이나 연인이 이별할 때 하나씩 나눠 갖던 표식 있지 않나. 또 나무나 종이에 글자 쓰고 도장 쾅 찍고 2개로 쪼개 각각 보관했다가 사용할 때 서로 맞추어 증거로 삼았던 것 말이다. ‘서로 부합하는지 맞춰본다’는 게 여기서 왔으리라. 그리하여 이름과 실질이 딱 떨어짐 혹은 겉과 속이 정확하게 맞음을 의미하는 성어가 되시겠다.
이 말은 <삼국지(三國志)>의 영웅 중 한 명인 위(魏)나라 군주 조조(曹操)가 왕수(王修)라는 대신에게 보낸 편지,〈여왕수서(與王修書)〉에 나온단다. 왕수(王修)는 중국 후한(後漢) 말의 사람으로 공융(孔融), 원담(袁譚), 조조(曹操)의 휘하에 있었던 정치가였다. 자신이 모시던 원담(袁譚)이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자, 곧장 달려와 원담의 시신을 수습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던 일화로 유명하지 않던가. 죽음을 무릅쓰고 주군의 시신을 자신이 거두겠다고 청원하는 이 의로운 사나이에게 조조가 질 수밖에.
그 일로 왕수의 충성심에 감동한 조조가 나중에 그를 요직에 등용하려고 하지 않았겠나. 그때 신하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조조가 왕수에게 편지를 보내 어떤 경우라도 흔들리지 말라고 당부했더랬다. 그토록 청렴하고 충정 가득한 왕수라면 나 같아도 그리했겠다. 그 편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단다.
“몸과 덕을 깨끗이 함으로 명성이 있고, 충성심과 능력으로 업적을 쌓아 세상의 미담이 되니, 이름과 실질이 서로 부합되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남이 심히 크도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명실상부는 실제 모습이 명성에 부합됨을 가리켜 이르는 말이 되었더라. 잠시 네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명실상부(名實相符)’, 이 단어가 주는 무게가 내게 그 어느 때보다도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자문하게 된다. 나의 ‘이름’이 대변하고 있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라는 사람의 이름과 실체는 어느 정도 부합할까?
모든 개념에는 내포(connotation)와 외연(denotation)이라는 두 측면이 있다. 전자가 어떤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성질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그 개념이 지시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의 이름 고유명사에는 외연만을 가지고 있지 내포는 가지지 않는단다. 정말일까?
누군가가 나는 ‘OOO’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면, 그가 아는 것은 단지 내가 ‘OOO’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그 사실뿐일까? 정말 ‘OOO’라는 고유명사는 단지 외연만을 갖는 것일까? 아무런 내포도 없이? 그렇다면 우리는 내 ‘이름’과 나의 ‘실체’가 부합한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지? 이 질문은 철학적 함의를 갖는다. 그러니 여기서 한 두 마디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 버트란트 러셀에게 물어봐야 하나?
암튼, 내가 고유명사의 의미와 기능을 들먹이면서까지 하고 싶었던 말은 뭐냐? ‘타인의 시선 속에 존재하는 나’, 그리고 ‘하나의 실체로서의 나’ 이 둘 사이의 간극이 궁금해졌다고 해야 할까? 나에게 이 명실상부(名實相符)의 사자성어를 들이대면 난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이름과 실체가 완전히 부합된 상태가 과연 존재할까 싶기는 하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고민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즉 나의 소신이라 할 만한 그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나의 실제 삶속에서도 반드시 구현되어야 한다고 믿기에.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는 얘기다. ‘명실상부’가 은밀하게 내게 건네는 책임감에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다잡아보는 시간이 또 이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