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일차_방약무인傍若無人

방약무인(傍若無人)이라는 성어를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어쩌면 이 단어가 우리에겐 더 익숙할 수도 있겠다. 우리 일상에서 주변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안하무인’이라는 말로 은근 디스(?)하지 않던가.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문자 그대로 ‘눈 아래 사람이 없다’로 해석된다면, 방약무인(傍若無人)은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즉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함을 이른다. 한자를 봐도 아주 심플하니 어려운 글자가 한 개도 없다.

곁 방(傍), 같을 약(若), 없을 무(無), 사람 인(人)

이 성어는 구조상 둘둘 나누기도 애매하지만, 편의상 하던 대로 해보면 ‘방약(傍若)’은 ‘곁이 ~같다’일 테다. ‘무인(無人)’은 ‘사람이 없다’고. 그러니 ‘곁이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뜻이 되고,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되시겠다. 

이 성어는 <사기(史記)>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음… 제목이 ‘자객열전’인 걸 보니 그럼 자객이 나오겠고만. 그렇다. 중국 전국시대 위(衛)나라 사람 형가(荊軻)가 고사의 주인공인데, 그는 연(燕)나라의 유명한 협객(俠客)이자 진시황(秦始皇) 암살을 시도했던 자객이었다. 그의 비수가 진시황의 심장을 향했지만, 아주 잘 피한 진시황의 보검에 찔리고… 결국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지만 말이다. <사기(史記)>의 작가 사마천이 이 암살 장면을 묘사한 부분도 그 디테일이 정말 압권이다. 

형가(荊軻)는 자신이 태어난 위(衛)나라에서 등용되지 못하자 결국 연(燕)나라로 건너가는데, 거기서 고점리(高漸離)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비파(琵琶)를 아주 잘 켰던 가보다. ‘자객열전(刺客列傳)’의 원전을 찾아보니, 이 두 사람이 금세 친해져서 술을 같이 마시면서 비파도 켜고 춤도 추고 노는 장면에서 바로 방약무인(傍若無人)이 나왔더라. 

친구 사이에 마음이 너무 잘 맞다보면 저렇게 신나게 놀다가 술이 들어갔으니 신세한탄도 하겠지. 그러면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하겠고. 그러다 같이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겠지. 사마천은 바로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곁에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였더라’라고 적고 있다. 그러니까 이 성어에 원래는 남을 무시한다거나 예의 없이 행동한다는 그런 의미는 없었다는 거다. 훗날 의미가 확장되어 부정적인 뉘앙스로도 쓰이게 된 것일 뿐. 그래서 현재는 방약무인을 누군가의 무례하거나 교만한 태도를 표현할 때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암튼, 형가랑 고점리가 현대에 살아난다면 좀 억울하기도 하겠다. 자기들은 그저 감정에 솔직하게 돈독한 우정을 나눈 것뿐이거늘. 졸지에 무례한 사람이 되어버렸지 않나. 하하.

주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감정에 충실한, 하고 싶은 것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참 멋지다. 하지만, 그 멋짐을 갖기 위해서 때로는 ‘방약무인’의 혐의를 감내해야 할 수도 있겠더라. 우리는 솔직함과 무례함의 그 경계에서 대체로 솔직함이 아닌 가식을 선택하곤 하지 않나. 무례함이라는 억울한 프레임에 갇히고 싶지 않아서일 게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고자 한 행동이 자칫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불러오기도 하니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굳이 남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꼭 나를 맞춰야 하나 싶다. 이 당연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솔직해지는 데는 어떤 위험부담도 기꺼이 질 거라는 다부진 용기가 필요한 건 맞다. 누군가는 그랬다. 감당해야 할 그 모든 짐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솔직함’은 살아가는 데 장기적으로 ‘옳은 방법’인 것 같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냉정하게 생각이란 걸 한 번 해본다. 타인의 불편한 시선이 싫어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차라리 솔직함을 포기해버리는 그 많은 선택들에 대해서. 금세 내 마음엔 이런 생각들로 그득해진다. 솔직함이라는 외피를 두른 무기는 타인을 일부러 곤란하게 만들거나 상처를 주는 데도 사용된다는 것을. 그리고 또 누군가는 나와 마주한 상대방의 마음이 다치는 게 싫어서 솔직하지 못할 때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블라블라블라… 

그 누가 솔직함에 대해 ‘단언컨대’를 들이댈 수 있겠나. 복잡 미묘하게 다양한 감정의 결이 담긴 그 어려운 삶의 원칙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