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칼럼을 읽다가 ‘백면선생’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백면선생? ‘백면서생’이라면 또 몰라도 이 단어는 왠지 생경하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련만 난 또 그 문장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칼럼리스트가 잘못 쓴 거네. 하하. 그리고 마음속에서 외쳤다. 오늘의 성어는 바로 너다. 백면서생(白面書生)!!!
‘백면서생(白面書生)’은 보통 글만 읽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이르는 말이다. 밖에 안 나가고 집안에서 책만 읽으니 얼굴이 하얗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테다. <송서(宋書)>의 ‘심경지전(沈慶之傳)’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했단다(이 성어는 <진서(晉書)>에서도 보이더라). 송서(宋書)는 중국 제(齊)나라 무제(武帝)의 명을 받아 정치인이자 문인이었던 심약(沈約)이 편찬한 기전체 역사서다. 자, 그럼 한자부터?
흰 백(白), 얼굴 면(面), 글 서(書), 날 생(生)
‘백면(白面)’은 말 그대로 ‘하얀 얼굴’이다. 그럼 ‘서생(書生)’은 ‘글 읽는 사람’? 쉬운 말로 ‘글쟁이’지 뭐. 그러니까 ‘흰 얼굴의 글쟁이’라고 하면 되려나? 아님, ‘창백한 지식인’ 정도? 바깥출입도 잘 안하고 골방에만 틀어박혀 책속에 코 박고 있는 선비를 상상하면 되리라. 이런 사람의 특징이 뭐겠나?
이제 ‘백면서생(白面書生)’이라는 성어가 나온 서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중국의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로 어여 가보자구. ‘남북조시대’라 함은 5세기 전반부터 6세기 후반까지 남북으로 분열되어 각각 왕조가 바뀌면서 흥망하던 시대를 가리킨다. 그때 송(宋) ·제(齊) ·양(梁) ·진(陳), 이렇게 4왕조를 가리켜 북조(北朝)에 대하여 남조(南朝)라 불렀지.
그중에서 바로 저 송(宋)나라에 심경지(沈慶之)라는 아주 용맹한 장수가 있었단다. 송나라의 왕, 문제(文帝)가 숙적인 북위(北魏)를 치려고 했지만, 심경지는 줄곧 ‘난 반댈세!’를 외치던 중이었더라. 하지만 짜증이 난 왕은 다른 의견을 듣겠다며 다시 문관(文官)을 부른 게 아닌가. 보란 듯이 말이다. 문제(文帝) 양 옆에 책만 읽었을 법한 문관(文官)이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거라. 아무리 해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 왕이 을매나 야속했겠나. 그 앞에서 심경지가 마지막에 내놓은 넋두리같은 반대의 변(辯)은 뭐였느냐?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자 하는 폐하께서, 한 번도 싸워본 적 없는 저 두 ‘백면서생’과 의논하는데, 그 전쟁이 어찌 성공할 수 있겠나이까?”
송문제(宋文帝)는 결국 심경지 말을 들었느냐? 그럴 리가. 그리하야 결국 전쟁에서 대패하고 말았쥐. 이 고사에서 백면서생이 나왔더라. 훗날 사람들은 ‘백면서생(白面書生)’을 ‘젊고 경험이 없는 지식인, 즉 책속의 지식만 알 뿐 실전 경험은 없는 사람’을 가리켜 말했단다. 확실히 부정적 뉘앙스가 있어 보이지? 세상 돌아가는 것엔 관심 1도 없는, 그래서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는 머얼건 얼굴이 떠오르지 않나? 결이 완전히 같진 않지만, 다른 말로는 ‘책상물림’이라고 표현해도 되겠네.
이 대목에서 난 왜 영어 단어 ‘너드(Nerd)’가 떠오를까나? 이 단어는 좀 더 범위가 넓게 쓰이는 것도 같은데. 범생이 기질도 있고, 또 특정 분야에만 몰두하는 나머지 타인과의 사회적 교류나 일상생활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내 선입견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너드’는 왠지 공대생 이미지가 강하다. 쩌~기 실리콘밸리의 마크 저커버그 같은? 하하. 아, IT 덕후 느낌이라면 요즘 유행하는 단어 ‘긱(geek)’이 더 그렇지 않나? 그런 것도 같네. 암튼, ‘너드’와 ‘긱’이 내겐 그런 이공계 이미지라면, 백면서생은 음… 문과 쪽? 창백한 문청(文靑)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니, 백면서생과 연결되는 단어들이 참 많구나. 이들 단어의 결은 다들 다르다 해도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한 분야만 파느라 대체로 세상의 많은 것들을 잘 모른다는 것? 한 마디로 다양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일 게다. 누구 얘기 같은가? 지금 이 순간, 많이 찔리는 1인. 책속에서 간접 경험만 하고 있는 나 역시도 그런 백면서생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책상 앞에만 앉아서 이 세상을 다 아는 양 오만을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허심하게 성찰하는 시간, 그렇게 밤이 흐른다.
광고가 많이 붙었네요..축하축하^^
제일 재미없는사람이 백면서생아닐까요?지오님은 아니에요^^
그니까요. 이게 먼 일이래요. ㅎㅎ 축하 감사합니당. 그레이스님^^
그리고 젤루 재미없는 사람에서 절 빼주셔서 넘 감동… 하하.
저도 그런 사람이 안 되려고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