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일차_교토삼굴狡兎三窟 

2023년도가 이제 한 달 하고 며칠 더 남았나? 올해는 모두가 알다시피 육십갑자의 40번째인 계묘년이었다. 다들 ‘검은 토끼의 해’라고 불렀지. 그래서였을까. 유난히 귀여운 토끼의 모습을 많이 보며 살았던 것도 같다. 크고 동그란 눈동자에 길쭉한 귀를 가진 새하얀 토끼는 정말 순하고 사랑스럽다. 

고 순둥순둥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왜 이 녀석들을 수식하는 말 중에 가장 으뜸은 ‘꾀 많은’일까나. 그 선입견의 8할은 분명 옛날이야기 속에서 그려진 토끼 캐릭터 때문이리라. 오늘 얘기해볼 성어 속에 나오는 토끼는 대놓고 교활할 예정이다. 아니, 한자가 그렇다고. 하하. 바로 교토삼굴(狡兎三窟)이다. 안 들어봤다고? 음… 들어봤을 긴데. 아님, 지금 잘 들어보시던가. 

교토삼굴(狡兎三窟)을 문자 그대로 풀자면, ‘교활한 토끼는 숨을 굴을 세 개는 파놓는다’는 뜻이다. 난 여기서 ‘교활한’ 대신 ‘꾀 많은’으로 바꾸련다. 그래서 이 성어는 ‘꾀 많은 토끼에게는 굴이 세 개나 있다’ 정도? 즉 지혜로운 자는 미리미리 준비하여 어려운 일을 면한다는 말이다. 지혜의 상징, 토끼답쥬?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 발음부터 익숙지 않은 이 성어가 분명 귀에도 눈에도 생경할 터. 일단 한자부터 눈에 들여보자.

교활할 교(狡), 토끼 토(兎), 석 삼(三), 구멍 굴(窟)

‘교토(狡兎)’는 일본 거기(?) 아니고 그냥 ‘교활한 토끼’다. ‘삼굴(三窟)’은 심플하게 ‘굴 세 개’고. 그러니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는 얘기다. 유비무환(有備無患)과 비슷한 의미로 위험이 닥칠 때를 대비해서 미리 여러 가지를 준비해둔다는 의미렷다. 토끼 참 똑똑하제? 준비성도 좋고. 

교토삼굴(狡兎三窟)은 사마천 <사기(史記)>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맹상군(孟嘗君)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정치인으로 이른바 ‘전국시대 사공자(四公子)’중 한 명이다. 예전에 언급한 것도 같은데? 제(齊)나라의 왕족으로서 진(秦), 제(齊), 위(魏), 무려 이 세 나라의 재상을 역임했던 사람이다. 그는 각지의 인재들을 다 자기 집안에 들여 후하게 대접하는 걸 무척 좋아했다네. 그의 그 많은 식객 중에 풍환(馮驩)이라는 괴짜가 있었더라. 거지인 주제에 겁도 없이 맹상군의 집을 찾아와 당당하게 식객이 되었다지. 

맹상군은 설(薛) 땅에 식읍을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 주민들이 자신에게 빌려간 돈을 갚질 않는 기라. 어느 날, 그 빚 청산을 해볼 요량으로 설땅에 식객을 보내기로 했더라. 그때, 하필 볼품도 없고 미덥지도 않은 풍환이 자청하고 나서는 거다. 가겠다는 데 보내야지 우짜겠노. 미션을 받고 길을 떠나던 풍환이 갑자기 맹산군에게 ‘질문 있소’ 한다. 뭔고?

“빚 받은 돈으로 무엇을 사올까요?” 

“아무거나. 우리 집에 부족한 것으로 사오시던가.”

설땅에 도착한 풍환이 빚진 자들의 차용증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금액이 상당한 거라. 그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그들 앞에서 그 차용증을 다 불에 태워버리는 게 아닌가. ‘맹상군 나리께서 그대들의 채무를 다 변제해주라 하시었소’하면서. 주민들이 그때 느꼈을 감동을 생각해보라. 그럼, 맹상군도 같은 생각?

뭘 사왔냐고 묻는 맹상군에게 풍훤이 그런다. 

“이 집에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와 의리인 것 같아 그것을 사가지고 돌아왔나이다. 차용증서를 다 불살라서요.”

지맘대로 인심 쓰며 빚잔치 하고 돌아온 풍훤이 마땅치 않았지만 꾹 참은 맹상군 그대에게 복이 있나니. 하하. 1년 후 맹상군이 제나라 민왕(泯王)의 미움을 사서 고초를 겪을 때, 설땅으로 잠시 가서 살게 되었으니. 상상이 되쥬? 은혜를 입었다며 맹상군을 환호하며 맞아주는 주민들을 보며 깨달았다는 거 아니오. 풍훤이 말한 은혜와 의리가 바로 이것이로구나. 그때 풍훤이 맹상군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나 뚫는 법이지요. 이제 겨우 한 개 뚫었을 뿐입니다. 나머지 두  개도 마저 뚫어드립지요.”

맹상군은 든든했겠다. 그 후, 정말로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두 개의 굴을 더 파놓은 덕에 맹상군은 재상에 있는 동안 편안할 수 있었단다. 승질 나쁜 거지인 줄만 알았던 풍훤이 맹상군을 이렇게 살리네. 바로 이 고사에서 교토삼굴(狡兎三窟)이 유래한 거다. 

이 성어는 또 은밀한 곳이나 방법이 많다는 것을 비유할 때도 사용할 수 있을 게다. 풍훤의 입을 통해 이런 말도 가능하지 싶다. ‘미래가 불안해? 미리 준비하라고.’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드는 거다. 어쩌면 교토삼굴(狡兎三窟)은 우리에게 퇴로를 남겨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에게 퇴로를 열어두면 그만큼 발전의 여지도 생기고 그러다보면 다시 희망도 생기지 않겠냐고. 이것이 삶의 지혜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다보면, 자기 자신을 늘 막다른 길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다반사더라. 반면, 자신을 위해 언제나 퇴로를 남겨두는 사람이 있다. 살다 지치면 언제든 들어와 쉴 수 있는 바로 그런 곳 말이다. 

오늘의 성어, 교토삼굴(狡兎三窟)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치 검은 토끼가 내 옆에 앉아 속삭이는 것만 같다. 스스로에게 여지를 주는 것이 곧 더 많은 기회, 즉 더 많은 선택권을 자신에게 주는 것임을 잊지 말라고.

뭔지 모를 막막함 속에 하루 종일 침잠해 있던 내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