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切磋琢磨)’를 이해하려면 머릿속에 옥을 가공하는 과정을 떠올리면 쉽다. 한자 그대로는 ‘옥돌을 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낸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우리에게 절차탁마는 어쩌면 ‘학문(學問)이나 인격(人格)을 갈고 닦음’으로 더 각인 되었지 싶다. 또 글쓰기에서라면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는, 그렇게 공들여 표현을 만드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아주 적절한 성어일 수도 있겠다.
이렇듯 이 사자성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아주 자주 쓰는 표현일 테다. 그런데 한자 그 자체로는 일단 딱 봐도 엄청 복잡해 보인다. 그만큼 흔하지 않아 어려운 것도 있고. 그래서 오늘은 늘 해오던 대로 한자들의 의미풀이와 함께 절차탁마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해볼 참이다. 새로운? 음… 무슨 뜻이얌?
현재 우리가 쓰는 절차탁마의 의미가 장작 그 출전인 <시경(詩經)>에서는 그리 쓰인 게 아니라면 어떨 것 같은가?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시에 대한 해석은 원래 시를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읽기가 가능한 것이니까. 아,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 전, 도올 선생의 ‘절차탁마’에 대한 해석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오늘 그 얘기를 해보자는 거다. 재밌겠쥐? 그럼 일단 각각의 한자부터 하나하나 살펴보며 그 축자적 해석을 먼저 해야 하리라.
끊을 절(切), 갈 차(磋), 다듬을 탁(琢), 갈 마(磨)
‘절차(切磋)’는 ‘(옥을 칼로) 자르고 (줄로) 쓸다’고, ‘탁마(琢磨)’는 ‘(옥돌을) 다듬고 갈다’의 뜻이다. ‘절차’도 그렇고 ‘탁마’도 그렇고 둘 다 1차적 해석은 ‘옥이나 뼈 따위를 정성스럽게 갈고 닦음’이다. 그야말로 거친 상태의 옥돌을 자르고 갈고 다듬어서 귀한 옥으로 만드는 물리적인 행위인 거다. 그 과정을 배움과 인격 함양의 그것에 대입해서 2차적 해석인 ‘학문이나 인격을 갈고 닦음’으로 의미 확장이 이루어진 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절차탁마에 대한 기본 이해다.
그런데 이러한 기존의 해석에 도전장을 내민 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도올 김용옥 선생이다. 공자님도 <시경(詩經)> 속 ‘절차탁마’를 ‘군자의 덕성 함양’으로 보았는데, 이 공자님의 해석까지 정면으로 까는 도올 샘, 역시는 역시다.
나 개인적으로는 <시경(詩經)>이라는 텍스트의 성격으로 볼 때, 충분히 도올 샘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 나는 그 ‘절차탁마’가 출현하는 문맥을 이렇게 재해석하고 싶다.
“瞻彼淇奧,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如琢如磨。(저 기수(淇水) 물가의 하늘하늘한 푸른 대나무를 보라. 저 아름다운 군자여, 옥돌을 깎아놓은 듯하구나.)
위에서 ‘여정여차(如切如磋),여탁여마(如琢如磨)’ 이 부분을 공자님은 군자가 인격을 연마함에 있어 옥돌을 다듬듯 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도올 샘은 그것이 틀렸다는 주장이다. 나의 생각도 도올 샘의 해석과 완전 같다(이렇게 속 시원할 수가~).
<시경(詩經)>은 주(周)나라부터 춘추시대까지 유행하던 시 형식의 민요를 모아 공자가 300여 편으로 엮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이다. 시경은 풍(風),아(雅),송(頌) 셋으로 크게 분류되는데, 그중에 풍(風)은 주로 다루는 게 저자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남녀 간의 사랑시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 표현으로 자유분방하게 씌어진 시란 말이다.
그러기에 시경의 많은 시에서 ‘군자(君子)’는 유교에서 말하는 ‘성인군자(聖人君子)’의 그 ‘군자(君子)’가 아니다. 연애시에서 ‘군자’는 그야말로 요조숙녀가 찾는 이성으로서의 ‘남자’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더라는 거다. 그 관점에서 시경의 시를 읽게 되면, ‘절차탁마’는 도올 샘의 의견처럼 ‘깎아놓은 것처럼 조각 같은 잘생긴 남자’를 묘사한다고 해석할 수 있음이다.
헌데, 공자님은 <시경(詩經)>의 한 시구를 가져와 질문하는 제자 자공에게 절차탁마를 인격수양의 모범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더라. 이건 공자님의 해석인 거다. 참고로, 한(漢)나라의 유물론자 왕충(王充)이 쓴 <논형(論衡)>에도 대놓고 ‘학문은 뼈나 옥돌을 절차탁마 하듯 해야 한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그러니 절차탁마가 학문을 닦고 인격을 수양하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인식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거다.
이번 기회에 예전에 <시경((詩經)>을 읽으며 그 텍스트적 성격과 뭔가 결이 안 맞는 듯한 ‘군자’에 대한 해석과 그와 관련 궁금해 했던 ‘절차탁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이 성어가 지금처럼 쓰이게 된 시작을 톺아봄과 동시에 실제 시경에서 쓰였을 법한 해석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어 참 좋았다.
이것이 이미 굳어져버린 절차탁마에 대한 기존 해석에 무슨 영향을 줄까마는 그럼에도 이렇게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노력은 분명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절차탁마가 <시경((詩經)>에서 이런 느낌으로 쓰였을 거란 생각으로 그 시를 다시 읽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