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에서 이팔전쟁이 발발하니 뉴스기사가 온통 이와 관련된 이슈들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수업자료를 준비하면서 이번 기회에 친구들과 중동지역, 그 원한의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한 번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토론 주제를 ‘이팔전쟁에 대한 모든 것’으로 정하고 나니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정말 열심히 공부하게 되더라. 그동안 단편적으로 읽어왔던 내용들을 다시 전체적으로 정리하려다보니 믿을만한 전문가의 해석이 필요했다. 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중동 사태에 대해 다 한 마디씩 던지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를 나의 멘토로 픽(pick)할 것인가?
그때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님의 칼럼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기사화된 칼럼을 다 찾아서 일단 읽기 시작했다. 곧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교수님의 강의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아… 말씀하시는 게 어쩌면 그렇게 품위가 있으실까나. 교수님 강의의 특징 하나는 사자성어를 너무도 적절하게 잘 구사하신다는 거다. 길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에서 단 네 글자로 정리해버리는 능력이라니.
서론이 길었네? 그래서 먼 말이 하고 싶었느냐? 고사성어 공부가 유용하다고요. 하하. 그러니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 정도? 음… 그럼 이제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볼까나. 오늘의 성어는 그래서 인 교수님의 강의에서 건져 올린 외교전략 용어 중 하나로 정했으니 바로 원교근공(遠交近攻)이렷다. 이 말은 <전국책(战国策)>의 ‘진책3(秦策三)’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가만, <전국책(战国策)>이 처음 나오나? 그럼 설명해야겠쥐? 주(周)나라 때부터 진(秦)나라 진시황 37년에 이르기까지 240년 동안의 정치와 사회, 그리고 여러 책사(策士)들의 언행(言行)을 담은 역사책이다. 전국시대의 여러 제후국 사이의 정치투쟁과 종횡가(縱橫家)들의 유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아하, 지난번엔 합종가(合縱家) 얘기했었는데, 오늘 드디어 종횡가 등장이오.
자, 그럼 그 많은 종횡가들 중에서 원교근공(遠交近攻) 관련 고사에서 나올 주인공은 바로 범수(范睡) 되시겠다. 이분도 전국시대 나름 유명한 달변가였던가 보다. 어느 날, 그가 진(秦)나라의 소양왕을 찾았더라. 소양왕은 전국 칠웅(戰國七雄) 중 나머지 여섯 나라를 다 통일하고픈 꿈에 부풀어 있었으니. 전국시대부터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일곱 나라, 제(齊), 초(楚), 연(燕), 한(韓), 조(趙), 위(魏), 진(秦) 이 전국 칠웅 알제? 암튼, 범수가 소양왕에게 해법이라고 내놓은 게 바로 이 원교근공(遠交近攻)이었더라. 일단 한자풀이부터!
멀 원(遠), 사귈 교(交), 가까울 근(近), 칠 공(攻)
‘원교(遠交)’는 ‘멀리 사귀다’요, ‘근공(近攻)’은 ‘가까이 치다’겠지. 즉 먼 나라와는 화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는 수법이랄까. 장기적인 안목에서 지금 당장은 이해가 긴밀하지 않더라도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와 친교를 맺는 외교정책을 가리킴이라.
범수의 생각은 이러했다.
“王不如远交而近攻,得寸则王之寸,得尺亦王之尺也。(왕께서는 멀리 사귀고 가까이 치심이 나을 것이오니다. 촌(寸)을 얻은 즉 왕의 촌(寸)이요, 척(尺)을 얻은 즉 왕의 척(尺)이니.)”
저기서 촌(寸)이니 척(尺)이니… 이런 말은 결국 한 마디로 그냥 야금야금 다 해먹자는 얘기? ‘왕께서는 저 멀리 강국 제(齊)나라를 치고 싶겠지. 근데 중간에 한(韓)나라 위(魏)나라 생각 안 함? 자칫 패하기라도 하믄 웃음거리, 왕의 명성에 스크래치. 오케이? 그러니께 우선 가까운 데부터… 그캐도 결국 다 먹게 됨.’ 바로 이런 말이렷다.
고뤠? 그리하야 그 말에 솔깃해진 소양왕은 기쁜 마음으로 범수를 응후(應侯)로 봉했다지. 과연 이 ‘원교근공책’은 나중에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룩하는 데 기본 이념이 되었다고.
정리?
원교근공(遠交近攻)은 외교전략 중 하나로서 멀리 있는 국가와는 좋은 관계를 맺고 가까운 나라부터 공격하는 수법을 가리킨다. 그럼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전체를 다 자기 지배하에 복속시키고자 하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이 표현이 태생되던 시기의 그 의미에서 많이 확장되어 외교 전략의 하나로 자리매김 했겠쥐.
서로 먹고 먹히던 춘추전국시대여~ 합종가와 종횡가들의 입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누… 약육강식 시대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지는 이 마음을 달래줄 입은 없는 것인가. 하하. 갑자기 친구와의 수다가 그리워지는 아침이다.
중동 지역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리고 멀리서 안타깝게 바라만 봐야하는 현재 속에서 참 복잡한 생각들이 떠나지 않더라. 인 교수님이 강의 말미에서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혐오도 학습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우리는 그 지역을 일단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고 아는 게 먼저라고. 교수님이 개인적 소회와 함께 전하던 그 진심어린 말씀에서 난 그분의 중동, 그리고 거기서 고단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참 많이 배웠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올해 가을은 그저 미지의, 그리고 슬픈 분쟁으로 가득한 세계로만 인식 되던 중동지역이 내게 조금 가깝게 다가왔던 계절로 기억되리라. 그들을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따뜻한 시선이 내 안에서 생겨났던 고마운 시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