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차_과유불급過猶不及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우리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사자성어에 속한다. 이 성어를 이루는 한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날 과(過), 오히려 유(猶), 아니 불(不), 미칠 급(及)’ 이 네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이 표현을 ‘지나침(過)은 오히려(猶) 모자람에 미치지 못한다(不及)’는 의미로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이 고사의 출전인 논어(論語)에서 공자님이 하신 말씀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럼,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보자.

어느 날,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 )이 스승에게 물었다. 사(師)와 상(商) 중에 누가 더 낫습니까? 공자 왈, 사(師)는 지나치고 상(商)은 미치지 못한다. 그러자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사(師)가 나은 것입니까? 이때, 공자가 대답한 말이 바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즉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고.

그러니 공자님 말씀대로라면 ‘지나침(過)=미치지 못함(不及)’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거다. 공자는 모자람이 지나침보다 낫다는 식의 우열의 관점에서 얘기한 게 아니란다. 여기서 ‘유(猶)’자를 ‘오히려’가 아닌 ‘~와 같다’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공자가 말하고자 한 바는 지나친 것도, 부족한 것도 아닌 ‘중용(中庸)’의 도(道)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이니까. 중용(中庸)이야말로 공자 가르침의 핵심적 가치가 아니던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도 중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어디서 그치고 머물러야 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라고 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마땅한 정도를 초과하거나 미달하는 것은 악덕이며, 그 중간을 찾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덕이라 했다. 불교는 또 어떤가? 중도(中道)의 생활 실천을 설법해오지 않았던가.

적절하고 적당함을 아는 게 중용이라는데… 누구나 안다. 우리 삶에는 ‘적당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만 그 적당함의 ‘정도’를 모를 뿐이다. 삶 자체가 균형의 미학이며 그 속에서 버티며 살아내는 게 인생이라더라. 얻으면 잃는 게 있고, 잃으면 또 그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는 법이라고. 노력한다고 반드시 얻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노력을 안 하면 얻을 기회조차 없다고 말이다.

‘얻음’에 자만하지 않고 ‘잃음’에 기죽지 않는 것!

인생을 살다보면 늘 마주하게 되는 양극단에서 균형의 축을 세우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균형의 삶’이 가능할까? 일단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부터 해보자. 중심축이 내 안에서 단단하게 나를 잡아줄 수 있도록. 겸허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노력 말이다. 

그 가장 어렵다는 중용적 삶의 철학이 저 ‘과유불급’에 담겨있었네. 모든 노력에는 어떤 형태로든 희생이 따르지만,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우리는 계속 나아가는 중이다. 인생은 결국 앞을 향해 나아가게 되어 있으므로. 이 가을처럼 말이다. 겨울의 혹독함을 이기고 봄날에 싹을 틔워 여름의 태양을 견뎌야만 가을의 결실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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