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일차_두문불출杜門不出 

오늘은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을 표현해주는 사자성어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가장 잘 하는 일이라고? 그게 뭔데? 음… 두문불출이다. 우리 일상에서 정말 자주 등장하는 성어이기도 하다. 또 집순이와 집돌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일 것도 같고. 근데, 저이들이 집에서 안 나오는 이유는 무엇? 집밖은 위험하니까. 하하.

두문불출(杜門不出)을 이루는 한자는 다음과 같다.

杜 : 막을 두(杜), 문 문(門), 아니 불(不), 나갈 출(出 )

‘두문(杜門)’은 ‘문을 막다’? ‘문을 닫다’는 뜻이겠지. ‘불출(不出)’은 ‘나가지 않다’겠고. 그래서 ‘두문불출(杜門不出)’은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외부와 왕래나 접촉을 끊고 은둔할 때 자주 쓰는 말인 거다. 

이 성어는 중국 고대의 역사책인 <국어(國語)> ‘진어(晉語)’편에 나온단다. 진(秦)나라 헌공(獻公) 때 태자였던 신생(申生)과 관련된 고사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사실 찾지 못했다. 진 헌공과 그의 비(妃)인 여희(驪姬)가 태자 신생을 제거하고 여희의 아들인 해제(奚齊)를 태자로 삼고자 했던 암투 속에서 나온 얘기라는 정도만 알 뿐이다. 여희는 헌공의 총애를 받아 왕비가 된 뒤 태자인 신생(申生)을 모함해서 죽이며 정치의 혼란을 가져왔던 인물이다. 역사가들이 희대의 요부로 평가하는 바로 그 무서운 여인. 

진나라의 대부 호돌(狐突)은 신생을 태자 자리에서 밀어내려는 음모가 계속 생기는 와중에 처음엔 간언도 해보고 했지만 결국 이도저도 귀찮다 싶었던가 보다. 그럴 때 제일 좋은 방법은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의 일과 거리를 두는 일일 게다. 훗날 역사가들은 그가 문을 닫고 밖을 나가지 않았던 게 훌륭한 계책이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그 당시 여희가 쏘아올린 공, 정치적 혼란은 심각했음을 알 수 있겠다.

신기하게도 이 성어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관련 고사가 전한다. 지금의 북한 황해도 쪽에 두문동(杜門洞)이라는 곳이 실제로 있었다.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의 충신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유명하다. 조선조에서 벼슬하지 않고 외부와 차단하며 모여 살았던 그들을 가리켜 ‘두문동72현(杜門洞七十二賢)’이라 부른단다. 이성계는 이곳을 포위하고 그 72인을 몰살했다고 하지. 잔인한 사람 같으니. ㅠㅠ 

그 후, 조선의 21대 왕 영조(英祖)가 그곳을 지나다가 그들의 충절을 기리는 칠언시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의 충신들처럼 대대로 계승되기를 힘쓰라(勝國忠臣勉繼世).”

뿐만 아니라 왕은 직접 ‘부조현(不朝峴)’이라는 세 글자를 써서 그곳에 비석을 세우게 하고 이 72인의 제사를 지내도록 명했다고 한다. 참고로 ‘부조현’의 ‘현(峴)’은 고개 ‘현’이다. 즉 ‘조정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골짜기’라는 뜻이겠다. 

우리가 그토록 자주 쓰는 이 성어에 이토록 감동 서사가 스며있을 줄이야.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이런 게 사자성어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무심코 사용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단어에 숨겨진 사연들을 알게 되는 이 경험이 정말 값지게 느껴진달까. 두문불출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두문동 72현을 떠올리던 나는 현타가 왔다. 그럼, 난 뭘 위해서 두문불출했던가? 갑자기 하찮아지는 나의 존재여. 하하. 

저 고려 유신들처럼 무슨 거창한 대의를 위해 두문불출하진 않았지만, 그 나 홀로 머물던 시간들은 나의 역사에서도 나름 의미가 있었노라 강변하고 싶어지는 이 마음은 뭘까나. 특히 하루하루가 너무 분주한 요즘 같아선 다시 나만의 동굴로 회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나에게 만들어준 에너지로 지금 내가 이렇게 다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러. 

그래서 결론? 두문불출, 그건 때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 열심히 살아내는 것만큼 꼭 필요한 게 바쁜 일상에 쉼표를 찍는 일일 테니. 그 오래전 독일의 수학자이면서 철학자 파스칼이 쓴 <팡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2 thoughts on “54일차_두문불출杜門不出 ”

  1. 모든 사물에 좋다 나쁘다라고 표현하는것은 참 위험할 수있는 접근 방법이라고 늘 경계해야한다고 햇지만, 두문 불출은 지금까지 그 단어가 뭔가가 막힌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말로 많이 알아왔지만, 오늘 샘의 이야기를 듣고, 가끔 현대 사람들에게는 두문불출도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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