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이다. 서로 의지하던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한쪽도 안전하지 않는 그런 관계에서 사용하는 성어인 거다.
입술 순(脣), 망할 망(亡), 이 치(齒), 찰 한(寒)
‘순망(脣亡)’은 ‘입술이 망하다(?)’, 어째 좀 이상타. ‘입술이 없다’로 하자. ‘치한(齒寒)’은 말 그대로 ‘이가 차다’, 즉 ‘이가 시리다’는 의미렷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렇다. 평소엔 의식하지 못하지만, 일단 입술이 없다고 상상해보라. 홀로 남은 이가 어떠할 지를. 그 얘기를 하는 거다.
이 성어는 중국 노(魯)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쓴 <좌전(左传)>의 진헌공(晉獻公) 고사에서 나왔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헌공(獻公)은 영토 확장을 노리던 중에 괵(虢)나라가 눈에 들어온 기라. 헌데, 괵(虢)을 치려니 중간에 우(虞)나라가 있네? 이를 어쩐다? 우(虞)를 지나야 하는디. 그때 눈치 빠른 대부(大夫) 순식(荀息)이 아뢰었다. 우(虞)의 군주는 탐욕스럽고 어리석나니 금은보화와 명마로 충분하오이다. 과연… 뇌물에 홀딱 넘어간 우나라 왕이 1도 고민 안하고 길을 내주려 하니, 이번엔 우나라의 대부(大夫) 궁지기(宮之奇)가 결사반대하며 나서는 것이었다.
“옛말에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는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했사옵니다. 괵나라와 우나라가 그와 같사옵니다. 괵이 망하면 우도 결코 온전하지 못하옵니다. 진나라에 길을 내주면… 그러시믄 아니~ 되옵니다아.”
나라의 군주가 멍청하면 약도 없느니. 아무리 현명한 신하가 간청한들 이미 금은보화에 눈이 먼 우나라 왕은 길도 내주고 나라도 내주고 말았으니. 나라의 운명을 예감한 궁지기가 우나라를 떠나며 했던 말이 그대로 현실이 된 것이렷다.
이 고사에서 유래된 순망치한(脣亡齒寒)은 관계가 아주 밀접해서 이해(利害)가 서로 맞물려 있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운명공동체처럼 서로 의지하는 그런 관계랄까?
순망치한에서 운명공동체를 떠올렸다면 ‘소울메이트’를 떠올리지 말란 법이 있을까? 결을 조금 달리해서 사람과의 관계성으로 넘어오면 충분히 함께 얘기할 수도 있으리라. 영혼의 짝처럼 느껴지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
난 언젠가부터 ‘소울메이트’하면 ‘고흐’와 ‘테오’가 생각나더라. 고독으로 점철된 생을 결국 자살로 마감한 빈센트 반 고흐에게 동생 테오는 소울메이트이지 않았을까? 수입도 없이 평생이 곤궁했던 고흐, 그뿐이겠나. 예술계에서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매일매일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때마다 테오에게 그 심정을 다 토로했던 고흐에게 테오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으리라.
테오의 부인 요 봉어르도 회상하지 않았던가. 매주 독특한 필체의 노란색 편지 봉투가 점점 늘어가는 데 이내 익숙해졌다고. 빈센트가 자살하고 6개월 만에 테오도 서른 셋의 젊은 나이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나. 테오에게도 고흐는 소울메이트였을지도 모르겠다(그냥 내 맘대로 생각~).
그토록 의지가 되는 누군가가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녀)가 사라지면 나도 없을 것 같은 그런… 살면서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건 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오늘 문득 ‘소울메이트가 꼭 사람이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나에게 위안을 주는 그 어떤 것도 내 영혼이 될 수 있을 테니. 그게 고독이어도 좋지 않을까? 하하. 이 엉뚱함이라니.
그러고 보니 올 가을은 내가 외로움이 아닌 고독의 시간 속을 걷는 것도 같다. 폴 틸리히는 ‘홀로 있음의 고통’이 ‘외로움(loneliness)’이라면 ‘고독(solitude)’은 ‘홀로 있음을 즐기는 상태’라 했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외로움에 비해 고독은 확실히 긍정의 힘이 느껴진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극복하는 건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말없이 나뭇잎의 바스락거림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자만이 가능하다 하지 않던가.
홀로 있을 때라야 우리 안의 심연 속에 꼭꼭 숨어있는 자아와 대면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어쩌면 내면의 자아와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매번 외로움에 지고 마는 게 아닐는지. 가을엔 이렇게 고독을 온몸으로 느끼다가도 또다시 일상적 삶으로 돌아와 살아내야 하는 게 인생인 듯하다.
사랑할 때조차도 ‘홀로 있음’을 결코 이길 수 없는 게 삶이라면, 그 외로움을 나의 일부로 끌어안고 고독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고독을 짊어질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단다. 사랑과 고독은 공존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사랑하면 외롭지 않을 거야’라는 헛된 소망에 기대기보다 고독을 짊어지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만 있다면 이 가을의 고독은 감내할 이유가 충분하리라.
고독과외로움의 차이는 있는듯합니다. 꼭 사람이 소울 메이트 일필요는 없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고독은 나를 깊게 만들고 외로움은 나를 작게 만드는것 같습니다. 그저 제 생각.. 오늘도 모르는 성어알려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샘~ 고독을 소울메이트로 삼고 더더더 깊어지고 싶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