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일차_미생지신尾生之信 

미생지신(尾生之信), 이 성어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 혹시 장그래? 하하. 그럴 수도 있겠다. 드라마 ‘미생(未生)’에서 장그래가 자신을 미생이라 했던가? 또 누군가는 윤태호 작가의 웹툰이 먼저 떠오를 지도 모르겠다. 

‘바알못’, 즉 바둑엔 문외한인 나는 미생이 바둑에서 무슨 의미인지는 사전적 정의로밖엔 잘 모른다. 궁금해서 바둑 잘 두는 분에게 여쭤본 적은 있으나 그닥… 아무튼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상태? 요렇게만 아는 정도? 바둑에서는 두 집을 지어야 산단다. 그전까지는 살았어도 살았다 말할 수 없는 상태, 바로 미생(未生)이란다. 미생이 있으면 완생((完生)이 있을 터? 그렇다. 완생은 미생과 반대로 집이나 돌이 완전히 살아있는 상태를 뜻한다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인생에서 과연 완생이라는 게 가능한 걸까? 절대 다수가 ‘미생’으로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완생을 꿈꾸리라. 어쩌면 죽을 때까지 우리는 미생에서 완생으로의 그 도상에서 고군분투하겠거니. 미생과 완생에 대한 얘기도 하려고 맘만 먹으면 끝도 없겠다. 일단 여기서 멈추고. 이쯤에서 오늘의 주인공 미생(尾生)을 데려와야겠다. 

지금부터 얘기할 미생(尾生)은 저 미생(未生)처럼 무슨 심오한 그런 뜻은 없고요. 그저 사람이름이라오. 한자도 다르쥬? 오늘의 성어 ‘미생지신(尾生之信)‘은 미생의 믿음’이란 뜻으로, ‘미련하도록 약속을 굳게 지킴’ 혹은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자구성은 아주 심플하다.

꼬리 미(尾), 날 생(生), 어조사 지(之), 믿을 신(信)

다시 말하지만 ‘미생(尾生)’은 사람이름이다. ‘지(之)’는 관형격 조사 ‘~의’이고, ‘신(信)’ 말 그대로 ‘믿음’이니 전체적으로는 ‘미생이라는 사람의 믿음’인 거다. 그렇다면 미생이 뭘 그렇게 믿었기에 이런 성어까지 탄생한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아주 순박한 청년이 있었드랬다. 어느 날, 그는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단다. 하염없이 기다렸으나 여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돌아와야지. 소나기까지 내린다면? 더 말해 뭐해. 하지만 미생은? 그녀가 오지 않는데도, 소나기가 내려 물이 밀려와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렸단다. 그럼 어찌 되었겠나? 결국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는 슬픈 전설이…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소진열전(蘇秦列傳)’과 다른 여러 서적에서 인용된다. 전국시대의 종횡가(縱橫家)라고 들어봤나? 중국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당시 국제외교상에서 활약한 유세객을 이르는 말이지.  바로 그 중심엔 소진(蘇秦)이 있고. 그렇다. 유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소진이 연(燕)나라의 소왕(昭王)에게 자신의 신의를 강조하고자 꺼냈던 게 바로 ‘미생(尾生)의 이야기렷다. 그렇다면, 소진은 미생의 믿음을 좋은 쪽으로 해석한 거겠군.

그런데 미생은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의 저서인 <장자(莊子)>의 ‘도척편(盜跖篇)’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는 미생이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는, 공허한 명분만을 좇는 천하의 나쁜 놈으로 묘사되고 있다. 장자는 정말 미생에게 화가 많이 난 듯 보인다. 어디 장자뿐이랴. 중국 전한(前漢)의 유향(劉向)이 쓴 <전국책(戰國策)>에서도 미생과 같은 신의는 단지 사람을 속이는 데 불과할 따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소진은 미생(尾生)의 행동으로부터 우직한 ‘신의’를 보았으나, 장자나 다른 많은 사람들은 모두 미생을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음… 똑같은 행동을 보고도 이렇게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사람이 다르니 생각도 다 다를 터. 그렇다면 각자 한 번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과연 나라면? 미생의 신의를 어떻게 해석할지.

장자의 말처럼, 미생은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겼으니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사람인 걸까? 현대인들의 눈에는 미생의 신의는 답답할 정도로 우직하고 고지식한 믿음일 뿐일 게다. 요즘 세상에 누가 그렇게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나. 그 답답함이 고구마 천 개는 먹은 것 같은데… 이걸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뒷맛은 왜 이리 씁쓸한지. 

새삼 약속이란 것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미생에게 그 약속은 대체 어떤 의미였기에 목숨까지 버릴 수 있었는지 묻고 싶어졌다. 남들은 별 거 아니게 보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명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을 테다. 미생처럼 말이다. 그래서 묻고 싶어졌다. 

미생아, 너에게 약속이란 뭐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