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일차_아사고인我思古人

대학 새내기 나의 첫 수업은 우리 과의 가장 어르신 교수님이 가르치시는 <중국문학개론>이었다. 그 첫날의 기억을 돌이켜보니 본격적인 강의였다기보다는 노교수님의 따뜻한 인생수업 같은 느낌이었던 듯하다. 그날 교수님께서 강의실에 들어오시자마자 칠판에 네 글자를 쓰셨더랬다. 

‘아사고인我思古人’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 ‘아사고인(我思古人)’이라는 말은 ‘나(我)는 고인(古人)을 생각(思)한다’라는 말이네. 나는 늘 옛 사람 한유(韓愈)를 생각하네. 나의 고인은 ‘한유’일세. 자네들도 나처럼 살아가면서 언제나 생각할 수 있는 고인 한 분씩을 만들었으면 좋겠네. 뭔가가 풀리지 않고 힘들다고 느낄 때 좌절하지 말고 그 자기만의 고인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지면 좋지 않겠나.”

한유(韓愈)는 중국 당(唐)나라 때의 문학가이자 사상가로서, 특히 당(唐)나라와 송(宋)나라 때 활동했던 8명의 문장가를 뜻하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니 그의 문장 얘기를 안 할 수가 있었겠나. 그때 우리는 한유의 훌륭한 문장들을 몇 편 읽었더랬다. 그것도 원문으루다. 교수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시며 해석해보라고 하셨지. 그 문장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유가 아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지은 시, 바로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였도다.

그날, 한유의 저 문장을 다 읽고 나서 우리 친구들은 다 책 맨 앞 장에 ‘아사고인(我思古人)이라는 네 글자를 한자로 썼드랬다. 그뿐인가. 모두들 고개를 갸웃한 채로 자신만의 고인을 찾아 한참을 고민했었지. 그 후, 우연한 기회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我思古人行三章章六句(아사고인행 3장 6구)>라는 시를 만났다.  

조선의 제22대 왕이었던 정조(正祖)가 갑작스럽게 죽고 어린 순조(純祖)가 즉위하게 되는데, 그 이듬해인 1801년에 ‘천주교도 박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겠나. 그것을 신유옥사(辛酉獄事)라 부르는데, 사실은 그 당시 조정을 장악했던 노론(魯論)의 벽파(僻派)가 정적 제거를 위해 일으킨 사건이렷다(아, 그 붕당정치가 결국 조선을 망치나니). 

그때 다산 정약용 선생도 천주교도로 지목되어 탄핵을 받고 장기현에 유배되지 않나. 그 고독한 시간 속에서 선생은 자신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옛 현인들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한다. 그때 쓰여진 시가 바로 ‘아사고인행 3장 6구’다.

3장으로 구성된 이 시에서 다산 선생은 모두 3명의 고인을 생각한다. 1장에서는 거원(蘧瑗)을, 2장에서는 소무(蘇武)를, 그리고 3장에서는 한유(韓愈)를 생각했다. 아하. 다산 선생의 고인 중에 한유가 있었구나. 그는 시에서 ‘한유가 8000리 길을 유배 간 것에 비하면 자신의 800리는 아무 것도 아니니 유배 온 처지 슬프다 말고 자신의 그릇(도량)이나 키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대학 새내기 시절, 강의실에서 칠판에 <아사고인>을 써주시던 교수님 얼굴이 떠올랐다. 덩달아 한유가 소환된 것은 당연했고.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나의 고인은 누구였더라?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살아오면서 힘들 때마다 떠올렸던 고인이 있었더라. 근데, 너무 많았다는 게 문제!! 

내가 처음 나의 고인을 찾았다고 생각했던 때는 <아사고인행 3장 6구>를 읽고 나서다. 이 시를 읽고 다산에 대한 책들을 깊이 읽기 시작했고 덩달아 조선 역사에 빠져들었나니. 그 많은 역사적 인물들 가운데 나의 원픽, 아니 투픽은? 다산(茶山)과 정조(正祖). 그 다양한 분야에서의 학문적 성취는 물론이거니와 백성을 그토록 사랑했던 애민(愛民)의 대명사, 다산 정약용, 그리고 그와 함께 수많은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조선의 마지막 개혁 군주, 정조(正祖) 이산(李祘)이다. 

너무도 슬픈 사도세자의 아들, 그래서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정조의 기구했던 생에 정약용이라는 이 멋진 신하이자 벗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그래서 이 두 남자를 나의 고인으로 정한 거였다. 이들에 관한 책들을 정말 열심히 읽어가며 참 많이 배웠던 것 같다. 이 모든 게 바로 ‘아사고인’이라는 네 글자 덕분?

‘아사고인’은 우리가 많이 쓰는 사자성어는 아니다. 사실 오늘의 고사성어는 한유의 시에 나오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이었다는. 하하. 한 마디로 오늘 난 샛길로 샜다는 얘기다. 한유 얘기를 하려다보니 ‘아사고인’이 떠올랐고, 다산의 ‘아사고인행’이 덩달아 소환되어야 했으니… 

그럼 또 어떤가. 꼭 계획한 대로 가란 법이 있다던가. 길을 우회한다고 해서 꼭 나쁜 것만도 아니거늘. 이렇게 예기치 않은 우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새로운 세계는 의외의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하니까. 그 의외성이 짙을수록 그 뒤에 따라오는 흥미는 배가될 수 있기에 우리는 암암리에 의외성, 그 어긋난 결과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전형성에서 벗어난 의외의 선택이야말로 오늘의 글쓰기가 내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아사고인(我思古人)’도 알았으니, 그럼 됐지 뭐~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