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넘어져도 금방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얘기로 시작해야겠다. 우리에겐 귀여운 아이 이미지로 연상되는 이 단어가 중국어로는 ‘넘어지지 않는 노인(不倒翁)’으로 번역된다. 암튼, 아무리 큰 고난이 와도 꿋꿋이 견뎌내는 그 오뚝이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사자성어가 있었으니, 바로 ‘권토중래(捲土重來)다.
말 권(捲), 흙 토(土), 다시 중(重), 올 래(來)
‘권토(捲土)’에서 ‘권(捲)’은 ‘말다’의 뜻이다. 그럼 ‘흙을 말다’? 이게 먼 말이지 싶을 게다. 전장에서 말이나 수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쉬우려나? 그렇다. 여기서 ‘권토(捲土)’란 뭔가가 빠르게 달릴 때 마치 위로 말려 올라가듯 일어나는 흙먼지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중래(重來)’는 뭐냐? ‘다시 온다’는 뜻이다. ‘중(重)’은 ‘무겁다’는 의미 외에도 ‘다시’라는 부사적 용법도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전체를 해석하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돌아옴’이다. 즉 실패했지만 실력을 키워 다시 도전함을 이르는 말이렷다. 보통은 잃었던 세력을 만회하여 되찾음을 의미한다.
이 말은 초한전쟁(楚漢戰爭)에서 한(漢)나라 유방(劉邦)과의 패권 다툼에서 패하고 오강(烏江)에서 생을 마감했던 초(楚)나라의 항우(項羽)를 기리는 시에서 유래했단다. 바로 당(唐)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杜牧)이 쓴 <제오강정(題烏江亭)>이라는 칠언절구(七言絶句) 시가 그것이다. 저 제목의 의미는 <오강정(烏江亭)에서 짓다> 정도 될까?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이기고 짐은 병가의 일이니 알 수 없는 법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수치를 끌어안고 치욕을 참는 것이 남아인 것을
江東子弟多才俊(강동자제다재준) 강동의 젊은이들 인재가 많노니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흙먼지 일으켜 다시 돌아왔다면 알 수 없었으리라
그 용맹했던 장수, 항우의 마지막은 언제 들어도 울컥한다. 강동의 젊은 병사들 8천여 명을 이끌고 승승장구하다가 해하(垓下)전투에서 패하여 오강(烏江)으로 후퇴하였으나 거기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하지 않던가. 결국 겨우 살아남은 스무 명 남짓 병사들만 한 척 있는 배에 태워 안전하게 ‘오강(烏江)’을 건네주던 그 순간에 항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그때, 그 강가에 있던 정자(亭子)지기가 강동으로 몸을 피해 권토중래하라고 권유했더랬다. 하지만 강동의 부모형제와 백성들 볼 낯이 없었던 항우는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자결하고 만다.
이 이야기가 훗날 두목의 시에서 다시 살아난 거다. 시인 두목의 안타까움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오는 듯하다. 강동의 아들 항우가 오강(烏江)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훗날을 도모했더라면 그 결과는 또 어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그는 어쩌면 항우가 ‘흙먼지 날리며 다시 돌아왔다’면 분명 패권을 차지할 수도 있었으리라 믿었던 걸까?
항우의 슬픈 서사와 함께 고사성어 ‘권토중래(捲土重來)’의 의미를 되새긴다. 우리는 모두 좌절과 방황을 수없이 반복하며 살아간다.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렇다. 우리 모든 인간은 그렇게 끊임없이 방황하고 쓰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방향성을 잃지 않으며 계속 나아갈 수만 있다면 흔들리며 가는 인생도 아름다울 수 있겠구나 싶은 거다.
잡보장경(雜寶藏經)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잊지 말자는 거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눈물 흘려야 했던 그 자체가 이미 큰 발전이고 성장이었음을. 이 생을 살아내는 기특한 우리 모두는 매순간 그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대로 끝내기 아쉬워서… 하하.
중국 당(唐)나라에는 성이 두(杜)씨인 걸출한 시인이 둘이나 되나니. 두보(杜甫)와 두목(杜牧)이라. 두목(杜牧) 작품의 결이 그보다 앞선 시대를 살다 간 두보(杜甫)와 비슷하다 하여 소두(小杜)로 불린다. ‘서리 맞은 단풍(霜葉)이 2월의 꽃보다 더 붉다(霜葉紅於二月花)’고 노래한 시인이 바로 두목 되시겠다(이름이 차~암 거시기 허요. 하하). 가을이면 꼭 한 번씩은 떠올리게 되는 시이지 싶다.
오늘, 이 깊어가는 가을밤에 두목의 시 <산행(山行)>을 다시 꺼내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겼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