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고우면(左顧右眄)은 우리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축에 속한다. 언제 쓰느냐?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 결정을 못 내리는 사람’을 ‘우유부단하다’고 말하고 싶을 때? 뭐 그런 태도를 빗대는 말이라는 거다. 그럼 이제 한자로 풀어볼까나?
왼 좌(左), 돌아볼 고(顧), 오른 우(右), 곁눈질할 면(眄)
‘좌고(左顧)’는 ‘좌측을 보다’, ‘우면(右眄)’은 ‘우측을 곁눈질하다’로 해석된다. 즉 좌우를 바라보면서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일 때, 혹은 이리저리 재면서 주변의 눈치를 살피느라 결정을 빨리 못 내리는 태도를 비유하는 말이다. 요즘은 대체로 후자의 뜻으로 많이 쓰이는 것 같긴 하다.
중국 위(魏)나라의 조식(曹植)이 쓴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라는 편지글에서 나온 말이다. 위(魏)나라는 삼국지에서 조조(曹操)의 나라다. 그 조조의 아들이 바로 조식(曹植)이렷다. 진사왕(陳思王)으로 알려진 그는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시인으로 당대 문단에서 아버지 조조(曹操), 형 조비(曹丕)와 더불어 ‘삼조(三曹)’로 불렸드랬다.
소설 <삼국지연의>의 폐해인지 덕분인지 그러고 보면 조조의 문학적 재능이 과소평가된 부분이 없지 않다. 그가 시부(詩賦)에서도 뛰어난 성취를 거두었음에도 말이다. 한 가문에서 문장가가 셋이 나왔다면 말 다했지 뭐… 암튼, 그런 대단한 집안의 자제였던 조식이 친구 오계중(吳季重)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재능과 기개를 칭찬하던 중에 나온 표현이 바로 ‘좌고우면(左顧右眄)이다.
오계중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었던가보다. 지금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라. 조식이 오계중을 이렇게 찬양하나니. 술잔에 술이 그득, 퉁소니 피리니 그런 소리가 울려 퍼지던 와중에 그가 독수리처럼 비상하니 봉황이 탄복하고 호랑이가 바라봤다나. 어디 그뿐인가. 한(漢)나라 고조(高祖) 때의 명신인 소하(蕭何)나 조참(曹參)도, 무제(武帝) 때의 명장인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이 와도 그와는 필적할 수 없다고.
이렇듯 오계중이 얼마나 현명하고 용맹한 사람이었는지를 다른 훌륭하다고 소문난 인물들과 비교하고 나서 했던 말이 바로 다음 문장이다.
左顧右眄, 謂若無人. 豈非吾子壯志哉!(좌고우면, 위약무인, 기비오자장지재)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펴보아도 사람이 없는 듯이 보이오. 이 어찌 그대의 장대한 포부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좌고우면’은 원래는 그저 ‘좌우를 둘러본다’는 매우 중성적인 뜻이었다는 거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오계중 만한 인물을 찾아볼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한 거다. 그런데 이 말이 나중에 ‘앞뒤를 재고 망설이며 결단을 못 내리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약간의 부정적 뉘앙스가 얹어진 표현으로 둔갑했다는 게 아이러니다. 어쨌든 요즘 정치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 사자성어는 우유부단(優柔不斷)과 비슷한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좌고우면이 나오게 된 원전의 의미와 현재 사용되는 뉘앙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한국인들에겐 오역된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회자되는 묘비명 얘기를 안 할 수 없겠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왠지 모를 넘치는 자신감과 귀여운 위트가 묻어나는 글귀, 바로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에 씌어 있는 문구다. 이 문구 하나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한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게 의도된 오역이었다는 게 아닌가. 어떤 광고 문구로 사용되면서 그리 되었다는데. 그럼 원래는 어떤 뜻이냐고?
‘정말 오래 버티면 이런 일 생길 줄 내가 알았지.’
저 말인즉슨 ‘나이가 들면 죽음이 찾아올 줄 내 알았지’라는 말이라더라. 또 다른 버전의 번역도 보자면, ‘나는 알았지. 무덤 근처에서 머물 만큼 머물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여기서 ‘이런 일’이란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겠지. 참 흥미롭지 않은가? 어느 기업의 마케터 덕분에(?) ‘우물쭈물하다가 자기도 그럴 줄 알게 될까’ 화들짝 깨달은 사람들은 ‘하고 싶은 거 다해’의 태도로 살게 된 거네?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적극적인 자세가 된 거니까 결과적으론 나쁘지 않은 효과 같은데… 하하.
그래서 한동안 현대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버킷 리스트(bucket list)’가 아닐까 싶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 말이다. 중세시대 사람들이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bucket)를 차버리는 행위(kick the bucket)에서 유래된 말이 그 이후로 달성하고 싶은 꿈의 목록이자 그것을 실행하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의미하게 된 것도 참 신기.
나 역시 버킷 리스트를 더 구체화시킨 격인 ‘to-do list’ 작성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리스트들을 작성하다 보면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이 새롭게 재발견되는 경우가 있더라.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궁금해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버킷 리스트를 살짝 들여다본 적이 있다.
1. 킬리만자로 등반
2. 손자와 놀기
3. 많은 사람들이 더러운 물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 알리기
4. 친구에게 짓궂은 장난치기
살아간다는 것, 그건 지극히 평범한 가운데서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리스트가 아닌가 싶다.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번지게 하는 그런…
‘좌고우면’이라는 성어를 다시 생각해보는 밤, 뜬금없이 버나드 쇼의 메시지(비록 오역이긴 했지만)가 잠시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의 버킷 리스트를 다시 업데이트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일까?
저의 버킷리스트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 만나기 입니다^^
그 멋진 버킷리스트가 바로 지금의 현주샘을 만든 거네요. 앞으로도 계속 될 거고.
손자와 놀기가 왜 이렇게 어색한지요? 너무 일찍 손주를 보셔서.. 손주와 제 막내 아들과 거의 동갑일듯한데..
ㅎㅎ 아.. 샘의 막내와 우리 손자가 동갑? 현타오네요. ㅎㅎ 샘~ 이 할미의 절규가 들리시나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