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엽지추(一葉知秋)는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니 가을이 왔음을 안다’는 뜻이다. 오늘의 이 고사성어는 순전히 나의 사심이 반영된 결과다. 하하.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아파트 앞의 벚나무 아래를 걸어가는데, 나뭇잎 한 잎이 내 머리 위로 톡! 떨어지는 게 아닌가. 아, 일엽지추(一葉知秋)…. 이럴 진대, 내 어찌 이 성어를 모른 척 할 수 있으랴.
그렇다. 그저 가을에 대한 얘길 하고 싶었다. 이게 다다. 오늘 이 성어를 고른 이유.
일엽지추(一葉知秋)는 중국 한(漢)나라 초기 회남(淮南)지역의 제후였던 유안(劉安)이 쓴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했단다.
전국시대 말기에 깊은 산속에 칩거하는 은자(隱者)가 있었더랬다. 그의 이름은 천기자(天機子). 그는 집 근처에 작은 밭을 일구며 산 아래로는 거의 내려오지 않았다고. 그러던 어느 날, 조(趙)나라의 한 귀족이 그를 찾아왔다. 분명 아주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왔겠지.
“산을 내려가지 않아도 천하의 일을 알 수 있다고 들었는데, 선생은 신선이오? 아니면 점술가요?”
천기자(天機子)가 껄껄 웃으며 ‘신선도 점술도 모르는데?’한다. 다만 사소한 징후로부터 그 뒤에 일어날 결과를 추측해 낼 뿐이라고.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오고 날씨가 점점 추워지겠거니 하는 것처럼 말이쥐. 그리고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하나 더 얹어주는 기라.
“진(秦)나라가 한(韩)나라를 멸망시킨 걸 보니 곧 조(趙)나라도 위태로워지겠구먼. 내 충고 들으시오. 귀국하지 마시고 여기에 머무시지요.”
여기서 잠깐, 저 한(韩)나라는 유방(劉邦)의 그 한(漢)나라 아닌 거 알쥐? 중국 역사에서 춘추전국시대에 우리나라 이름과 똑같은 한자를 쓰는 ‘한국(韓國)’이라는 나라가 존재했었다는 사실. 그냥 그렇다고요.
와… 그런데 이게 웬일? 얼마 후, 진나라는 과연 조나라를 멸망시켰고, 이어서 다른 나라들을 차례로 멸망시켰다지 뭔가. ‘천기자’는 그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더니만(‘천기누설’의 그 ‘천기’가 아니더냐), 저런 신통방통한 능력이… 하하하. 암튼, 이 고사로부터 ‘일엽지추(一葉知秋)라는 말이 나왔단다.
한 일(一), 잎 엽(葉), 알 지(知), 가을 추(秋)
‘일엽(一葉)’은 ‘나뭇잎 한 잎’이다. ‘지추(知秋)’는 ‘가을을 알다’이고. 그러니까 전체 의미는 ‘나뭇잎 한 잎에 가을을 안다’이다. 여기서 ‘개별적인 현상으로부터 전체적인 형세의 발전 추이와 결과를 본다’는 의미로까지 확장되었다. 즉 작은 것으로부터 큰 통찰을 얻는 지혜를 의미하기도 하겠다. 어쩌면 사색의 계절, 가을과 이리 잘 어울릴꼬.
가을이 한층 더 깊어졌다. 나뭇잎들은 이제 옷을 알록달록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속도만 다를 뿐 결국 가는 길은 같다. 이 친구들이 완벽하게 변신을 끝마쳤을 그날을 그려보니 숨이 막히도록 눈부시다. 나뭇잎에게 말을 걸어본다. 네 생애 최고의 순간을 내가 함께 해주마고.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나뭇가지 뒤로 펼쳐진 시리도록 파란 가을 하늘. 아… 가을이다. 정말 가을이 오롯이 내 안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그때, 한동안 계속 입으로 되뇌었던 안도현 시인의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가을의 소원 /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가을이 오면 늘 한 번쯤은 꺼내보게 되는 시다. 아… 저기 잠자리! 그거 아는가? 잠자리는 날개를 펴고서 살아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앉아서 죽는단다. 그렇게 반듯하게 산화하는 잠자리… 잠자리의 생을 떠올리며 드는 생각. 나도 그렇게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 그대로 이 생을 마감할 수 있었으면…
가을은 이렇게 문득문득 내 생의 끝을 생각하게 한다. 가을만의 ‘깊이’이리라.
샘의 고사성어와 함께 소리에 민감해서인지 말에 나는 소리에 선입견을 가졌던 저를 발견하고 조금씩 소리말고 말의 뜻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뒷마당에 가장 마지막으로 추수하는 호박과 감를 땄습니다. 이제 가을이 왔고겨울준비를 하자는 우리 집이보내는 신호입니다. 오늘도 멋들어진 고사성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글들..잘보고 갑니당
와.. 클레어샘이닷~^^ 반갑고 감사해요! 샘~ 가을이 이제 다 가고 겨울이 온 것 같습니다. 따뜻한 겨울 맞이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