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일차_서시빈목西施嚬目

중국의 월(越)나라에 서시(西施)라는 미인이 있었단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나중에 미인계를 써서 오(吳)나라를 멸망시키는데, 그때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보냈던 여인이 바로 서시(西施)렷다. 구천(句踐)? 부차(夫差)? 어라,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맞다. ‘오월동주(吳越同舟)’편에서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가 서로 원수 갚는 얘기 했었지. 그뿐인가. 그 둘의 고사에서 온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뜻도 덤으로 얹었을 게다. 바로 그 월나라의 미녀가 오늘의 주인공이로다.

서시빈목(西施嚬目), 발음부터 생경한 이 성어는 ‘무턱대고 남의 흉내를 내다가 오히려 웃음거리가 됨’을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서녘 서(西), 베풀 시(施), 찌푸릴 빈(嚬), 눈 목(目)

‘서시(西施)’는 그저 한 여인의 이름이요, ‘빈목(嚬目)’이란 ‘눈을 찌푸림’이다. 그러니 해석하자면, ‘서시가 눈을 찌푸리다’쯤 되겠다. 근데, 이게 왜? 이래서 고사를 알아야 한다는 거쥐.

서시(西施)는 심장쪽이 많이 아팠나보더라. 한 번씩 통증이 찾아오면 가슴을 쥐어짜며 눈을 찌푸리곤 했다는 걸 보니. 근데 그 모습이 느~무 섹시하고 이쁜기라. 참~나. 예쁜 사람은 뭘 해도 예쁜가보다. 그래서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 명이 아니더냐. ‘물고기도 미모에 반해 헤엄치길 잊었을 정도’의 미인이라는 뜻에서 ‘침어(沈魚)’라는 애칭도 있잖나.

햐~ 이게 먼 일이고? 그 마을의 한 못생긴 처자가 언제부턴가 자기도 가슴에 손을 대고 미간을 찌푸리며 다니는 게 아닌가. 서시를 그대로 따라서 말이다. 남들이 다 예쁘다 하니 자기도 서시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게지. 헌데. 이를 어째, 이쁘긴 커녕(자신에게 좀더 당당했어도 멋졌을 것을~). 마을 사람들, 그 처자를 볼라치면 다들 질겁하며 집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리네? 이 웃픈 이야기에서 서시빈목(西施嚬目)이라는 성어가 나온 거다. 

이 얘기는 <장자(莊子)>의 ‘천운편(天運篇)’에 나오는 고사다. 장자(莊子)는 중국 전국시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가 공자의 상고주의(尙古主義)를 비판하면서 한 이야기라고 전해진다. ‘외형적인 것에만 사로잡혀 본질을 잊었다’고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도 공자를 형식주의에 빠져있다고 엄청 뭐라 했더만. 사실, 유교가 형식을 심하게 중시하긴 하지. 

그래서 장자가 이 고사를 통해 하고자 한 말은 뭐냐? 제도나 규범, 그리고 도덕도 시대가 변하면 함께 변해야 한다는 거다. 공자는 춘추시대 말엽이라는 그 난세를 산 사람이 아니던가. 그 시대에 주왕조(周王朝)의 이상정치(理想政治)를 실현하려 했으니. 옛날 주나라의 것을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에서 그대로 따라하겠다고?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고? 이것이 서시를 무작정 흉내 내고 따라하던 그 처자의 행동과 뭐가 다르겠냐는 거다. 바로 이 얘기인 게다.

공자의 ‘형식주의’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대학 때였던가? 실제로 논어(論語) 강독할 때 답답했던 마음이 이거였구나 싶다. 주나라의 제사 의식이며 의복 형태며 뭐 그런 형식적인 것들이 너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 부분 읽으면서 ‘이게 도대체 왜 필요하냐’며 짜증도 많이 냈는데(앵간해야지~)… 그런 거 하나도 안 궁금한데 말이지.  

유교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면서 너무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걸 순간순간 깨닫는다. 그래서 그런가. 장자의 공자비판에 절대 공감하게 되는 이유가 말이다. 예전엔 ‘서시빈목(西施嚬目)’ 하면, ‘덮어놓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꼬집는 표현! 이 정도면 충분했다. 오늘은 그 원래 알던 의미보다도 장자가 이 말을 했던 의도에 집중하며 더 오래오래 곱씹게 된다는. 그런데 이게 그렇게 새로울 수가 없다.

배움이란… 참~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배울수록 늘 새롭게 알아가는 이 기쁨이 정말 크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야 내 눈에 담기고… 한 번도 그렇게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다른 시각에서 다시 바라보게도 되고. 그렇게 나의 앎의 영역은 시나브로 확장되겠거니. 이런 소박한 바람을 내 안에 따뜻하게 품어보는 이 순간이 감사한 밤이다. 

6 thoughts on “33일차_서시빈목西施嚬目”

  1. 제도나 규범, 그리고 도덕도 시대가 변하면 함께 변해야 한다는 거다. 매우 공감합니다. 서시빈목西施嚬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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