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차_함흥차사咸興差使 

지난번 ‘8일차_흥청망청(興淸亡淸)’편에 이어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역사와 관련된 사자성어 두 번째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사성어는 모조리 다 중국에서 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순수하게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유래된 것들도 많더라.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성어도 그중 하나인 거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와 그의 아들, 그러니까 조선의 3대 왕이었던 태종 사이의 고사에서 유래했다는 바로 그 사자성어. 

우리 일상에서 함흥차사는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가. 이런 얘기 많이 들어봤을 게다.

“아니, 심부름 간 게 언젠데 함흥차사야.”

사실 요즘은 비단 사람과 관련해 무소식인 경우에만 쓰이는 건 아닌 듯하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들, 예를 들면 정부의 정책이 말만 무성하고 후속 조치는 전무한 상황을 지적하는 ‘함축적 비판’에도 함흥차사는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 그렇다면 이 성어가 어떤 연유로 지금처럼 쓰이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진다.

함(咸), 일어날 흥(興), 보낼 차(差), 사신 사(使) 

여기서 ‘함흥(咸興)’은 우리 한반도 북부에 위치한 함경남도의 도시 이름이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곳, 하지만 우리에겐 ‘함흥냉면’으로 유명한 바로 그곳이다. ‘함흥’은 이렇고, 그럼 ‘차사’는 뭐냐? 원래 ‘차사(差使)’는 중요한 임무를 위해 파견하는 임시직을 가리킨다. 그럼 저 네 글자를 조합하면 ‘함흥으로 간 차사’? 그쯤 될 테다. 근데? 그게 왜 ‘깜깜무소식’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그것이 유래된 고사는 조선후기의 야담(野談)집인 <축수편(逐睡篇)>에 나와있단다(‘역사서’가 아닌 ‘야담집’이라는 데 주목! 사실 이 출전에 대한 설도 분분하다). 일단 함흥차사 얘기가 나오게 된 전사, 그러니까 프리퀄(Prequel)에 해당하는 ‘왕자의 난’ 얘기부터 언급해야겠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보면, 조선 초기에 두 차례에 걸쳐 왕자의 난이 일어난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두 번 다가 이방원과 관련되었다는 거다. 

제1차 왕자의 난(1398년)은 이방원이 이복형제였던 이방번과 이방석, 그리고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을 죽인 사건이다(이방원 vs 정도전). 그것은 아들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에게 칼을 들이댄 쿠데타였다고 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때의 이성계의 입장이 되어봤다. 다 장성한 아들이 자신의 또 다른 아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어린 자식을 죽인 거다. 어디 그뿐일까.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친구 정도전의 피가 묻은 칼날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그가 맨정신으로 살 수가 있었겠나. 그래서 옥새를 들고 자기 고향이었던 ‘함흥’으로 떠나버린 거다. 

제2차 왕자의 난(1400년)은 동복형제 간의 싸움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왕좌에서 내려오고 둘째 아들 이방과가 정종이 된 상황인데, 그에겐 적자(嫡子)가 없네? 이때, 다음 왕이 될 세자 자리를 노린 넷째 아들 이방간이 동생 이방원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바로 2차 왕자의 난이렷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왕좌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함흥에 계신 아버지를 도성으로 모셔오고자 여러 번 ‘차사’를 보냈다. 근데 이게 웬일인고. ‘함흥’에만 갔다 하면 ‘차사’가 돌아오질 않네? 환궁할 생각이 1도 없던 이성계는 함흥에 오는 차사마다 잡아 죽였다고 전해진다(이 기록의 신빙성은 글쎄~). 암튼, 이로부터 한번 가면 감감무소식인 사람을 가리켜 함흥차사라고 했다나. 이것이 바로 함흥차사의 탄생비화 되시겠다. 

함흥차사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이야기로 다시 쓰여지기도 하더라. 어찌어찌해서 나중에 이성계가 결국 돌아오긴 했으니. 이렇게 ‘혈육의 정’ 관점에서 접근하든 신하의 관점으로 보든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다. 나 개인적으로는 역사공부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이방원에 관한 기록들 속에서 보게 된 서사라 그런지 한동안 상념에 잠기게 되더라. 이방원이 워낙 입지전적인 인물이지 않은가. 생각할 게 좀 많은가 말이다. 그때 당시 조선의 상황 속에서 이성계의 심정, 이방원의 입장 등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함에 있어서 어떻게 바라봄이 옳은지를 새롭게 인식하게 했던 조선의 역사 공부! 그때 만났던 함흥차사에 대한 추억을 소환한 10월의 어느 오후.

4 thoughts on “28일차_함흥차사咸興差使 ”

  1. 와` 아는 사자성어 나왔다. 했는데 [함흥차사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이야기로 다시 쓰여지기] 가 있어서 갈길이 멀구나 생각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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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하. 샘~ 함흥차사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같은 혈육의 정을 얘기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는 뜻이었어요. 해석은 자유니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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