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왜 이 성어냐? 음… 오늘 수업을 하는데, 학생들이 하는 주제브리핑을 듣고 있노라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정말 잘 한다. 모두들~’ 주제 발표와 토론 진행을 맡은 좌장은 좌장대로, 발표는 발표대로, 연사와 통역사가 된 친구들은 또 어떻고. 그 통역을 듣고 크리틱하는 친구들까지. 오늘 뭐하나 부족함이 없었으니.
귀가하는 지하철에서 지친 몸을 문 쪽에 기대고 섰는데,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성어가 떠오르는 거다(요즘 내 일상의 모든 순간은 고사성어로 통하노니~하하). 그러면서 미소 짓게 되더라는. 흐뭇함일까, 뿌듯함일까. 나를 웃게 만든 이 청출어람(靑出於藍)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봄직한 익숙한 성어일 테다. ‘푸른색은 쪽(藍)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할 때 쓰는 고사성어 되시겠다.
푸를 청(靑), 날 출(出) 어조사 어(於), 쪽 람(藍)
이 네 한자 중 특별히 모르는 단어가 있는가? 특별히 설명해야 할 건 없어 보인다. 굳이 할라치면 ‘어조사 어(於)’ 정도? 한문에서 어조사란 실질적인 어휘 의미는 없고 그저 다른 한자를 보조하는 문법적 의미만을 나타내는, 즉 우리말의 조사나 어미 같은 역할을 하는 거다. 여기서는 ‘~로부터, ~에서’라는 ‘출처, 근원’을 나타내는 ‘처소격 조사’에 해당한달까? 그래서 해석해보자면, 문자 그대로 ‘푸름(靑)’은 ‘쪽(藍)’ ‘에서(於)’ ‘나왔다(出)’이다.
그럼, ‘쪽(藍)’이란 무엇이냐? ‘마디풀과의 한해살이 풀’이란다. 옛날에는 이 잎으로 물감을 만들어 옷감을 염색했다지. 쪽을 찧어 물에 담가 놓으면 염색에 쓸 푸른 물이 나온단다. 그런데 이 색이 원래 쪽빛보다 훨씬 푸른 게 아닌가. 여기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표현이 나온 거다.
이 말은 중국 전국시대 주(周)나라 때의 유학자 순자(荀子)의 사상을 담은 책인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에 나온다. 순자는 맹자(孟子)가 주장한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고 하는 성선설(性善說)을 반대하며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그는 사람의 본유적 욕망에 주목하고, 그것을 방임하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므로 ‘악(惡)’이라 했다. 그러니 후천적인 가르침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단히 정신을 수양함으로써 그 욕망을 제어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렷다. 그의 성악설은 언뜻 보면 맹자의 성선설과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 목적은 같다 하겠다. 사람들로 하여금 수양을 통한 도덕적 완성에 이르게 하기 위함인 거다.
앗, 또 멀리 갔다. 돌아와 청출어람에 다시 집중!
청출어람이 <순자(荀子)> “권학편(勸學篇)”에 언급되는 부분은 이렇다.
君子曰, 學不可以已。(군자왈, 학불가이이) 靑,取之於藍, 而靑於藍(청, 취지어람, 이청어람) 氷, 水爲之, 而寒於水。(빙, 수위지, 이한어수) “군자가 이르노니, 배우기를 그쳐서는 아니 된다. 푸른빛은 쪽에서 취했으나 그보다 더 푸름이요, 얼음은 물이 그리 된 것이나 그보다 더 차거늘.”
학문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쪽에서 나온 빛이 더 푸르듯이, 또 물에서 나온 얼음이 더 차듯이 배움을 계속하다 보면 스승보다 더 깊어질 수 있음이다.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음이라.
어라?(또 노파심에~ ㅠ)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 이렇게 한 문장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여기엔 ‘어조사 어(於)’가 두 번 나오네? 뒤에 나오는 ‘청어람(靑於藍)’에서의 ‘어(於)’는 ‘~보다’라는 ‘비교격 조사’인 건 다 알쥐? 그래야 ‘쪽빛(藍)’, ‘보다 더(於)’, ‘푸르다(靑)’는 의미가 되잖나. 하지만, 보통은 줄여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들 하지.
‘쪽에서 나온 물감이 오히려 더 푸름’이라. 캬~ ‘스승에게 배운 제자의 학문이나 실력이 그 스승을 능가함’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정말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자로서 가장 흐뭇한 순간이라면, 친구들이 그동안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자기 안에 내재된 것들을 유감없이 발현시킬 때가 아닐까 싶다.
오늘 강단에 서서, 혹은 자기 자리에서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가진 것을 십분 발휘함으로써 수업 시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 모든 학생들이 참 감사하다. 그 친구들이 만들어낸 에너지가 내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준 하루, 오늘이 나에게 인사한다.
‘수고했어! 오늘도~’
나도 덩달아 우리 친구들에게 건네는 한 마디.
“최고였어요. 여러분,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좋은 선생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능가하는 걸 보면 뿌듯함을 느끼고 아닌 분들은 질투를 하는듯합니다. 제자가 한발짝 더 앞으로 나가는거라 보는것 처럼 즐거움이 어디있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배웁니다. 그런데 전 어조사 이런걸 다 까먹었네요.. 어쩌면 좋습니까..
어조사 까먹어도 괜찮아요. 샘~^^ 다른 거 하기도 너무 바쁜 샘인데요.. ㅎㅎ
공자와 비교되는 순자님이시네요..
그치요? ㅎ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 늘 비교의 대상이지요. 최종 목적지는 같다 해도~
특출나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청출어람 . 오늘도 잘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