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일차_적반하장賊反荷杖 

어제에 이어 ‘올해의 사자성어’ 얘기를 한 번 더 해보려 한다. 1위는 견리망의(見利忘義)였었지? 그럼 2위는 어떤 성어일까. 궁금하면 500원! 하하. 바로 25.5%(335표)를 얻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차지했단다. 적반하장, 다 알쥐? 거 왜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거. 뜻도 알 테고.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바로 그 성어 말이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교수는 국제외교 무대에서 비속어와 막말을 해놓고 기자 탓과 언론 탓, 무능한 국정운영의 책임은 전 정부 탓을 한다고 지적한다. 누가 그랬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뿐인가. 언론의 자유는 탄압하면서 자유를 외쳐대는 기만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더라. 백퍼 공감!! 자, 그럼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한자풀이를 보자.

도둑 적(賊), 되돌릴 반(反), 멜 하(荷), 몽둥이 장(杖)

딱 보니 한자가 아주 간단하건 아니네. 이건 둘둘 나누는 게 좀 어색할 듯하다. 우선 ‘적(賊)’은 ‘도둑’일 거고, ‘반(反)’은 원래는 ‘되돌리다’는 동사로 많이 쓰이는데, 여기서는 ‘반대로, 도리어’라는 뜻의 부사용법으로 이해하면 쉽겠다. 그리고 ‘하장(荷杖)’에서 ‘하(荷)는 ‘메다, 짊어지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뒤에 오는 ‘몽둥이’라는 의미의 ‘장(杖)’과 어울리게 ‘들다’로 해석해야 할 듯하다. 참고로 이 단어에는 ‘꾸짖다’는 뜻도 있다는 사실. 그러니 뒤에 몽둥이만 아니라면 ‘성내다, 꾸짖다’로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한자 설명이 좀 길었지만, 결론은 ‘도둑이 되레 매를 든다’는 뜻이렷다. 즉 적반하장(賊反荷杖)은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인 거다. 이 성어를 중국어 사이트에서 찾아보니, ‘한국성어’라고 떡 하니 표시되어 있는 거라. 그렇다. 이 단어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표현이고, 중국어에서는 완전히 똑같은 게 없다. 

대신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仁祖)때의 문학평론집이라 알려진 <순오지(旬五志)>에 적반하장에 대한 풀이가 나온다. 이 책은 학자이자 시평가((詩評家)였던 홍만종(洪萬宗)이 국문학의 가치에 대해 논한 것으로, 시작한 날부터 끝마친 날까지 겨우 십오일이 걸렸단다. 그래서 책의 이름을 <순오지(旬五志)>라 했다고. ‘순(旬)’이 ‘열흘 순(旬)’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 책을 <15지(十五志)>라고도 부른다네. 


<순오지((旬五志)>를 보면, ‘적반하장은 도리를 어긴 사람이 오히려 스스로 성내면서 업신여기는 것을 비유한 말(賊反荷杖以比理屈者反自陵轢)’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잘못한 사람이 죄송하다고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을 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자주 사용되는 사자성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쓸 수 있는 사자성어로는 주객전도(主客顚倒)가 있겠다. ‘주인과 객이 바뀌어 손님이 외려 주인 행세한다’는 뜻이다.

사자성어 말고 적반하장과 비슷한 우리말 속담도 쌔고 쌨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는 말도 있지. 조금 생소한 표현이지만 ‘문비(門裨)를 거꾸로 붙이고 환쟁이만 나무란다’도 있다. 문비(門裨)가 뭐냐고? 정월 초하룻날 나쁜 귀신을 물리치려고 궁문(宮門)이나 협문(夾門) 또는 사가(私家)의 대문에 붙이는 화상(畵像)을 그리 부른단다.

우리 일상에서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이런 적반하장의 경우는 참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이 사자성어가 이토록 익숙하지 않겠나. 우리 사회에 염치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성어를 쓸 일은 줄어들 텐데… 

그러고 보니 ‘올해의 사자성어’ 1위를 한 ‘견리망의(見利忘義)’도 그렇고 2위의 ‘적반하장(賊反荷杖)’도 그렇고 다 부정적인 표현이 꼽혔구나. 한 해를 결산하면서 지난 1년 동안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는데 기분 좋은 일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 올해가 그렇게 암담했다고? 아닐 거다. 그래도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좋았던 일이?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 꼭 찾아내고 말꼬얌!!

2023년, 한 해의 끝을 향해 이렇게 하루하루 잘도 간다. 나의 아쉬움은 아랑곳 하지 않고서.